인류는 끊임없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동한다. 교통수단이 기계화와 자동화되지 않았을 때에는 본인의 발로, 때로는 배를 혹은 우마차를 이용하였다. 19세기에는 기차가, 20세기 들어 비행기와 우주선이 새로이 선보였다. 이러한 운송수단의 발달과 함께 교통사고, 해양사고와 같은 새로운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가정에서는 본인 안전을 확보하고 개선하기 위해서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있으나, 운송수단을 이용할 경우는 주어진 환경에 따라야 한다. 각국은 교통수단을 이용할 경우에 직면하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과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내가 잘 하는 게 뭘까? 하고 싶은 게 뭘까? 더 나아가 우리 아이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은 뭘까?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는 것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우리아이가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내가 해줘야 할 것은 뭘까? 내가 나에게 늘 하는 질문이다. 그런데 답은…. 답은 떠오르는 게 없다.지금 내가 생각하고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내가 잘할 수 있고, 잘하는 것이고,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지만 이것은 비단 나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하는 부모님에게 "
산! 우리민족에게 산은 삶에 지친 이들의 위안처였다. 웅비지사에게는 호연지기를 기르는 수련장이었으며, 가난한 백성에게는 생존의 삶터였다. 폭정에 시달린 백성에게는 피난의 장소였고, 맞서는 이들에게는 저항의 중심이었으며, 인생을 궁구((窮究))하는 이들에게는 기도처였다.서양 사람들에게 산이 호기심과 정복의 대상이라면, 우리민족에게 산은 두려움과 신앙의 대상이었다. 서양 사람들이 정상정복의 욕망으로 산을 밟고 오를 때, 우리민족은 감히 산을 밟고 오른다 하지 않았다. 신에게 무릎 꿇듯, 어머니 품에 안기듯 겸허한 마음으로 입산한다고 하
주변의 자연 생태계를 둘러보면 한결같이 숲이든 바다든 강이든 그 안에는 어느 한 종류의 생명만이 살지 않는다. 누가 강제로 조정하지 않은 자연 생태계의 힘은 그 다양성에서 나온다. 밭에 어느 작물 하나만 계속 심는다면 그 밭은 오래 못 간다. 이것저것 심어야 땅심도 강해지고 병충해에도 강해진다. 만약에 산에 풀 한 포기 없이 한 종류의 나무만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 숲은 병들고 죽은 산이다. 다양한 식생의 나무들이 어우러져서 산을 만드는 것이다. 바다에 한 종류의 물고기만 산다고 해보자. 그건 생명을 잉태한 바다가 아니라 죽은 바
아기 엄마라면 한 번쯤 '누군가 속 시원하게 알려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명하고 행복한 육아의 정답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사랑일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랑을 어떻게 잘 전달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가장 훌륭한 사랑의 전달은 안고 만지고 쓰다듬으며 아기의 몸과 함께 하는 것이다. 아기는 사랑받고 싶어 하며 태어나서 1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다.태어나서부터 두 살까지 주 양육자의 따뜻한 보살핌과 일관적인 양육에 의해 마음의 안정과 자신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신뢰감이 형성되
인류에게 보석과 같은 책 중에서 주역은 우주 원리를 이야기 하고 있다. 주역에서 우주는 끊임없이 변하고 또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를 가지고 있다 한다. 만물 변화를 다른 기운의 조화와 마디(절)에 의해 설명도 하고 있다. 사람의 인체에 관절이 있듯이, 만물의 변화도 마디와 매듭에 의해 순조롭게 봄·여름·가을·겨울처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마디를 인간과 시대에 적용하면 세대라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우리나라에서는 1950년대 남북분단과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은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였다. 인구 변화와 세대 변화에 초점
대흥사에는 사천왕상이 없다. 해남군 사대 명산에 한 분씩 모시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명산 중 하나가 계곡면 흑석산이다. 산의 깊은 품에서 흘러나온 맑은 물이 비옥한 농토 적셔주니, 1968년 가뭄 때에도 계곡면은 다른 고장보다 피해가 작았던 것이다. 산 좋고, 물 맑고, 들녘 기름진 계곡, 계곡면은 효행의 고장이다.성진리의 효자 방씨와 만년리의 효자 정씨의 효행은 주민들의 칭송을 넘어 호랑이까지 감동하게 했다니, 나라에서 효자비를 세운 것은 너무 당연하다. 이는 두 문중의 긍지일 뿐만 아니라 계곡면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마을
남도에서 누군가를 부를 때 쓰는 말이다. "여보세요"의 사투리다. 낮춰 부르지 않으면서 상대에게 말을 걸 때 사용하는데, 친근하게 대화를 위해 부르는 어투다.대화는 상대와 서로 주고받는 말이라고 하지만 나는 자기 생각을 타인을 통해 확인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와 매우 정중하게 의견 나누며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가운데 나오는 자기 목소리라고 본다. 그래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상대가 필요하고 상호 진지한 경청이 필요한 것이다.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말하는 건 일방적 주장이고, 경청이 없는 대화는 자기 말만 강요하는
1980년대 초까지 농촌과 도시에서 많은 가족들의 보편적 구성은 조부모, 부모, 자녀들로 이뤄져 있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러한 대가족 구성은 당연한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경제의 산출과 가치가 농업에서 점차 경공업과 중공업으로 이전하면서 농촌과 대가족은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다. 더 세밀하게 보자면, 197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이농은 도시에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중장년층 이하의 농민들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에 농촌에서 대가족의 순환과 대가족 중심의 노인 봉양과 가족문화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효
아이들에게 놀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에게 있어 놀이란 언어적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는 것을 표현하고 자신의 속상했던 감정들을 모두 발산하게 하여 행복하고 건강한 아이로 성장하게 하는 좋은 매개 역할을 한다.놀이는 아이에 있어 소통의 창, 마음의 창이 된다. 즉 놀이는 아이의 언어이지만 어른들은 아이와 놀아주는 것을 어려워한다. 놀이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그냥 지켜보거나 놀이를 학습으로 유도하기도 한다.나 또한 세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와 어떤 놀이를 해야 할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조기교육으로 때가 되면 한글
해남고을은 금강산 줄기가 동에서 서로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북쪽의 매서운 바람을 막아주고 남쪽의 밝은 햇살이 종일 비추어 겨울이 따뜻한 고향이다. 금강골의 맑은 물은 어미 소의 젖줄처럼 해남고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도시에서 해남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어미 소의 무릎을 닮았다하여 이름 지어진 우슬재를 넘어야 한다. 우슬재는 해남의 첫인상을 가름하는 관문이다.1960년대초 4·19혁명의 정치실험이 5·16쿠데타로 무너져 군수 등 지방 고위직을 임명하던 시절 이야기다. 해남경찰서장 임명장을 받고 부임해 오던 모 인사가 있었다.포장 안
해남군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해남의 인구는 지닌 2009년 12월 8만 1000명에서 2015년 7만6000명, 2018년 말 7만1900명으로 감소되고 있다. 고령화도 심화되고 있다.지난 2월 22일자의 해남신문 지면에는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주 지면 에서는 해남 배추 농가가 물 밀 듯 들여오는 수입산 배추 때문에 깊은 시름에 놓여 있음을 나타낸다.이는 해남 인구의 증가와 감소가 지역경제와 동전의 양 면처럼 서로 깊은 관련을 갖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인구 증감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과 해석을 할 수
언제부턴가 해남, 아니 여기저기 다른 시골길을 가다 보면 커다란 현수막을 문득 만나는 일이 있다. 두 종류의 것이 대부분이다. 하나는 누군가의 승진, 입학, 취직 등을 알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태양광 시설 반대 혹은 축사 반대 등이다.자기 집 앞마당에 거는 거라면 모르겠으나 만인이 지나가는 길목에 거는 것이니 응당 같이 축하하자고 혹은 자랑하고 싶다고, 아니면 같이 반대하자고 혹은 싫어함을 알리겠다고 건 듯하다.무엇에 대한 반대는 대부분 공동체의 집단적 의사를 담은 것이니 그렇게 반대함은 절박한 여러 사정이 있을 듯하다. 그런데
좋은 엄마란 아이가 좋아하는 엄마가 바로 좋은 엄마이다. 어느 날 우리 셋째 딸에게 " 승현이 생각에 엄마는 어떤 엄마야?"라고 물어 본적이 있다."엄마는요, 좋은 엄마예요""왜? 엄마는 승현이 혼내기도 하고 잔소리도 하잖아"라고 다시 물었다. "그래도 좋아요. 내가 좋아하는 엄마니까 좋은 엄마지요!"라고 말하는 것이다.'좋다' 라는 건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므로 '좋은 엄마'라는 것은 없고, 아이가 좋아하는 엄마만 있다는 뜻이다.엄마라면 모두 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을 것이다. 좋은 엄마가
평생 거친 바다에서 고기 잡는 어부로 살아온 노인이 있다. 여러 날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노인, 홀로 망망대해로 나가 그의 배보다 더 큰 물고기를 사투 끝에 잡는다. 물고기 너무 커 배에 싣지 못하고 끌고 오지만, 상어 떼가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다. 노인이 물어뜯는 상어 떼와 싸우며 항구로 돌아왔을 때에는 앙상한 뼈와 대가리만 남게 된다. 놀란 구경꾼들 몰려든다. 노인은 오두막집에 지친 몸 누이고 아프리카초원의 사자 꿈을 꾸며 잠든다.평화로운 산골에서 옹기장이로 평생을 살아온 노인이 있다. 눈 쌓인 겨울, 조수로 일하던 젊은이
해남에서 가장 오래 해로한 부부는 옥천면에 거주하시는 윤주섭·문복례 씨 부부라고 한다. 75년을 함께하는 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오래도록 해로하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평지풍파가 지나갔을까. 남편이 혹은 아내가 상대를 함부로 대했다면 그리고 거짓된 사랑을 엮었다면 이토록 오래 해로하는 삶이 가능하겠는가. 백년해로는 평범한 듯해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꿋꿋하게 자기의 길을 걸어온 삶이다. 그래서 그분들이 바로 우리의 휴머니스트이자 레전드(영웅)이다.휴머니즘이라 함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상(至上)의 것으로 삼는
교통의 기본은 움직임과 멈춤이다. 움직임은 무언가(교통수단)에 의해 사람과 물자를 이리 저리로 돌아다니게 한다. 멈춤은 교통수단인 사람의 다리, 바퀴 즉 수레와 차량, 철도, 배, 비행기를 이용하기 위해 혹은 이용한 후 기다리는 것이다. 멈춤과 움직임은 서로를 보완하면서 사람과 물자를 전 지구촌 곳곳까지 이동하게 한다.해남에 철도가 놓이고 있다. 철도는 해남지역에서는 새로운 교통수단이다. 정거장인 역과 철도 선로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물자가 오고 갈 수 있다.해남을 포함하는 전남 보성과 전남 무안 임성간 철도 연결사업은 1998년
2018년 라이프스타일의 키워드는 소확행과 워라벨이었다. 소확행이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며, 워라벨은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말처럼 행복과 삶의 질을 높인다는 뜻이다.내일은 막막하고 마음은 불안한 시대에 성취가 불확실한 행복을 쫓다보면 현재 삶에 만족하지 못하게 되고 삶이 행복하지 않으면 긍정적인 시선으로 현 상황을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현 사회분위기가 불확실한 행복을 쫓아가도록 만들지는 않았을까?일자리, 주거환경 등 불확실한 미래는 청년들에게 현실로 다가와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에 정
다산 정약용 유배 생활 10년 째, 1810년의 어느 가을 날, 천리 먼 길 유배지의 임을 그리워하는 부인 홍 씨는 간절한 사랑의 증표로 시집올 때 입었던 노을빛 붉은 치마 곱게 접어 다산초당 임에게 보낸다. 붉은 치마 받아 든 남편 다산은 아픈 가슴 달래며 부인을 그리는 애틋한 사랑의 마음 담은 첩 네 권을 만든다.여기에 자식들을 위한 교훈의 글을 쓰고 하피첩이라 이름 짓는다. 이는 노을빛 붉은 치마로 만든 작은 책이란 뜻이다. 2015년 경매때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거금 7억5천만 원에 사들여 소장 중 인 보물 하피첩의 스토리텔링이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오래 그리고 멀리 가지 못한다. 여럿이 함께 천천히 가야 멀리 갈 수 있다. 그런 가운데 티격태격 일도 벌어지고, 이리저리 사람도 만나면서 문화도 만들어지고 '공동체'(共同體)가 만들어진다.농사는 땅을 파는 것만이 아니다. 땅을 존중하지 않으면 소출이 작고, 내 먹거리가 병든다. 이웃을 배려하지 않으면 수로가 막히거나 농로가 막혀서 농사를 망친다. 농촌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성장한다. 그 가운데서 인심이 난다. 인심은 사람의 마음이니 동물의 마음이 아니다. 먹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