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호(농부)

 
 

해남에서 가장 오래 해로한 부부는 옥천면에 거주하시는 윤주섭·문복례 씨 부부라고 한다. 75년을 함께하는 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오래도록 해로하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평지풍파가 지나갔을까. 남편이 혹은 아내가 상대를 함부로 대했다면 그리고 거짓된 사랑을 엮었다면 이토록 오래 해로하는 삶이 가능하겠는가. 백년해로는 평범한 듯해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꿋꿋하게 자기의 길을 걸어온 삶이다. 그래서 그분들이 바로 우리의 휴머니스트이자 레전드(영웅)이다.

휴머니즘이라 함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상(至上)의 것으로 삼는 사상이라 한다. 그 존엄은 어찌 보면 지식인들의 팍팍한 가슴에서 우려내는 영역이 아닌 실제 우리 주변의 삶 속에서 찾아지는 그 따뜻함이 아닐까. 그 휴머니즘이 멀고도 어려운 책 속이 아니고 우리 주변의 오래도록 해로한 부부들의 삶 속에서 가만히 전설처럼 녹아있다.

놀라우리만치 오래도록 해로한 부부의 이야기는 이혼율이 급증하고 더욱이 황혼 이혼율마저 가파르게 올라가는 세상에서 보기 드문 신화처럼 들린다.

오래도록 해로하는 부부의 삶이 바로 가족을 화목하게 지키는 것이고, 우리의 사회를 물질이 아닌 인간이 본래대로 대접 받도록 건강하게 지켜주는 것이며, 공동체가 즐겁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물질은 소멸되어도 인간의 정과 따뜻함은 지워지지 않는다. 부부가 같이 화목하게 살아왔음을 확인한다면, 우리는 이분들에게 우리 사회의 장수도 증진 시킬 겸, 가정 화목도 증진 시킬 겸, 소중하게 다가올 오래된 미래를 배울 겸, 크게 존경을 담아 기념해 주면 어떨까.

해남군에서 2011년부터 '노인의 날' 행사 때 진행해 오고 있는 '백년해로 상'을 크게 확대하여, 50년, 60년, 70년, 80년 등으로 차등을 주어서 마음에 불과한 표창장만이 아닌 그분들을 주인공으로 작은 음악회를 열어드리거나, 원하시는 국내외 여행이나 주거환경 개선 등 무료로 챙겨 드리는 물적인 혜택도 같이 드리면 어떨까 한다. 해로한 부부들에게 특별히 존경을 듬뿍 담아 주는 모습은 한 가족만의 기쁨을 넘어 우리 모두가 축하해 주어야 할 모범이 아닐까. 억지로 젊은이들에게 효를 가르치려 들지 말고 실제적인 일로써 그 모범에 보답을 한다면, 자연스럽게 우리 주변이 따뜻해지리라 본다.

시골 인구는 계속 줄고 있고 그러면서 별반 젊은이들이 없는데도 오래도록 지치고 힘 빠지게 강물 거슬러 억지로 노 저어 올라가려는 뱃사공 같은 정책을 거두고, 늙은이들의 천국으로 늙음을 상품화하는 노인 특구로 해남을 만들어 간다면 지역에 활기를 넣어 주고 오히려 젊은이들에게 여러 가지 일자리를 제공하리라 본다. 엄청난 세금을 투입하여 물질 특구인 산업 특구만 만들려고 혈안이 되지 말고 진정한 인간 특구를 만들어 보면 좋을 듯하다.

그리하여 부모님들이 오래 살아도 존경은커녕 가족 공동체로부터 강제로 분리되어 요양원이 마지막 출구가 되는 피폐한 사회를 조금은 어루만져 줄 것이고, 자식들이 늙은 부모를 건성으로 마주할 때, 자신들의 미래도 그렇게 치워버릴 것인지 그들에게 되묻게 될 것이다. 가정에 부모님이 계실 때와 안 계실 때, 명절 모습의 양과 질이 확연히 다름은 왜일까. 우리를 늘 보듬어 주던 그 따뜻함이 식었기 때문이리라.

아주 오래도록 둘이서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끝끝내 부부의 삶을 이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인간계에 있을까. 사업이야 망하기도 흥하기도 하지만 부부생활이야 망하면 끝이다. 흥한다는 말은 없다. 망하는 일만 남은 부부생활에서 아름다움을 깨트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며 해로함은 경이로움이다. 그것은 인간의 정이 가득 담긴 삶이며, 인간의 길은 속도가 아니라 올바른 방향을 잡고 가는 삶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답이 없는 인생에서 부부 사이의 오답을 먼저 찾지 말고 상대를 격려하자. 존중하고 배려하며 인간의 삶으로 끝까지 함께 가자. 인간 농사를 멋지게 지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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