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기(자유기고가)

 
 

 다산 정약용 유배 생활 10년 째, 1810년의 어느 가을 날, 천리 먼 길 유배지의 임을 그리워하는 부인 홍 씨는 간절한 사랑의 증표로 시집올 때 입었던 노을빛 붉은 치마 곱게 접어 다산초당 임에게 보낸다. 붉은 치마 받아 든 남편 다산은 아픈 가슴 달래며 부인을 그리는 애틋한 사랑의 마음 담은 첩 네 권을 만든다.

여기에 자식들을 위한 교훈의 글을 쓰고 하피첩이라 이름 짓는다. 이는 노을빛 붉은 치마로 만든 작은 책이란 뜻이다. 2015년 경매때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거금 7억5천만 원에 사들여 소장 중 인 보물 하피첩의 스토리텔링이다.

하피첩은 자식들에게 주는 교훈의 글 내용보다 남편 다산과 부인 홍 씨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묘사한 스토리텔링으로 더 유명하다. 마치 상품의 가치보다 상품을 포장한 장식에 더 눈길이 가는 아이쇼핑 같다고나할까. 그러나 스토리텔링은 진실과 다를 수 있다.

부인은 왜 하필 시집올 때 입고 온 붉은 치마를 보냈을까? 붉은 치마는 혹시 사랑의 증표가 아닌 경계의 메시지는 아닐까? 다산은 왜 부인이 보낸 노을빛 치마에 부인을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을 쓰지 않고 자식들에게 주는 교훈의 글을 써 보냈을까?

시인 박목월이 여 제자와 제주로 사랑의 도피 여행을 할 때, 서울의 부인, 제주까지 찾아와 남편과 여 제자 앞에 내 놓은 것은 남편의 속옷과 여자가 입을 치마와 저고리였다고 한다. 부인의 품격 높은 질투에 눌려서 집으로 돌아온 박목월, 아픈 마음을 시로 써내려간다. 바로 김성태 작곡의 애창가곡 '이별의 노래'이다.

그랬다. 유배 생활 십년 차 다산 정약용에게는 여인이 있었던 것이다. 여인에게서 낳은 딸도 있었다. 딸의 이름은 홍임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부인 홍 씨의 마음은 어땠을까? 다산이 홍 씨에 대해 쓴 기록으로 짐작해 본다. 다산은 죽은 며느리 심 씨를 위해 지은 '효부심씨묘지명'에서 '시어머니의 성품이 좁아 마음에 차는 경우가 적었다'고 썼다. 다산은 또 둘째 학유가 강진 유배지에 문안 왔다 돌아갈 때 써준 '신학유가계'에서'나와 네 어머니는 지기(知己)다, 다만 속이 좁은 것이 문제다'라고 썼다.

유배지에서 여인을 품어 딸까지 낳았다는 소식을 접한 부인 홍 씨, 유배지의 여인에게 입으라고 붉은 치마 보냈을 리 없으니 남편 다산을 향한 질투를 붉은 치마에 담아 보냈을 것이다. 부인의 평소 성정(性情)을 알고 있는 다산, 억하심정으로 치마 잘라 자식들에게 교훈의 글 쓰지는 않았을까.

부부의 속마음 알 수 없으나, 그 두 사람도 인간의 보편적 감정과 본능을 지닌 여자이고 남자라고 생각하면 숨겨진 진실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피첩의 문화재적 가치가 훼손되거나 의미가 반감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 사람의 사랑과 질투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흥미와 인간적 친숙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과 질투가 하피첩이라는 교훈의 값진 문화재로 재탄생했으니 이 얼마나 극적인 반전의 스토리텔링인가.

1818년 유배지 강진을 떠나는 다산의 해배 길에 여인과 어린 딸 홍임도 함께 했으나 모녀는 다산의 집에서 소박맞고 강진으로 돌아온다. 천리 먼 길 임 따라 갔건만 임만 두고 돌아서는 슬픈 모녀의 발길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모녀의 슬픈 사연을 노래한 시집이 있으니 '남당사16수'이다. 남당은 여인의 친정 강진의 작은 포구마을이다. 모녀의 슬픈 운명 씻김받기를 바라며 16수 중 한 편을 올린다.

홍귤촌 서쪽에는 월출산이 솟았는데/ 산머리의 바위 하나 마치 오는 사람 기다리듯 서있네/ 이 몸 만 번 죽는대도 남은 한이 있으니/ 원컨대 산머리의 한 조각 망부석이 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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