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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에게 산(山)은정성기(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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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31  1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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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우리민족에게 산은 삶에 지친 이들의 위안처였다. 웅비지사에게는 호연지기를 기르는 수련장이었으며, 가난한 백성에게는 생존의 삶터였다. 폭정에 시달린 백성에게는 피난의 장소였고, 맞서는 이들에게는 저항의 중심이었으며, 인생을 궁구((窮究))하는 이들에게는 기도처였다.

서양 사람들에게 산이 호기심과 정복의 대상이라면, 우리민족에게 산은 두려움과 신앙의 대상이었다. 서양 사람들이 정상정복의 욕망으로 산을 밟고 오를 때, 우리민족은 감히 산을 밟고 오른다 하지 않았다. 신에게 무릎 꿇듯, 어머니 품에 안기듯 겸허한 마음으로 입산한다고 하였다.

서양 사람들이 산에 대한 호기심으로 요정신화를 만들 때 우리민족은 산에 대한 경외감으로 산신령 전설을 만들었다. 불교 사찰에 가면 산신각이 있다. 이는 전통 불교와는 상관없는 우리민족 고유의 신앙대상인 산신령을 모신 신전이다.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의 배타적 신앙과 달리 불교는 다른 신앙도 포용하기 때문이다.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하고 조선을 창업하자 남해의 산신령이 전국의 산신령 중 제일 먼저 개국을 칭송하니 이성계는 기뻐하며 이 산을 비단을 둘렀다는 의미로 금산(錦山)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는 고려 말 이성계가 군사를 이끌고 남해에 주둔하면서 왜구의 약탈을 막아준 인연이 남해 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칭송되면서 금산의 전설이 되었을 것이다.

광주의 서석산 신령님은 무력으로 세운 조선의 정당성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화 난 이성계가 “에이, 그놈의 산 등수를 매기지도 말거라”하여 무등산(無等山)으로 부르게 되었다니 전설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백제의 멸망과 후백제의 좌절이후, 호남은 중앙 정치의 핍박에 고개 숙이지 않는 저항정신으로 불의한 국가권력에 맞서다 희생된 한 맺힌 고장이다. 이 한 맺힌 역사가 무등산의 전설을 낳은 배경인 것이다. 전설은 미완의 동학혁명으로 계승되고, 마침내 5·18희생으로 이 땅에 민주주의를 꽃피웠다. 전설은 호남인의 긍지이다. 긍지는 시대를 넘어 세계를 울렸으니, 5·18민주화운동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그것이다.

우리의 옛 어른들은 스마트폰의 인증 샷보다 멋진 산행기록을 남겼다.

유두류기(遊頭流記)는 폭군 연산에 의해 부관참시당한 선비 김종직이 지리산 천왕봉 일대를 둘러본 후 기록한 산행기록이다. 이는 당시 조선 백성의 생활상과 지리산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김종직 일행이 천왕봉에 올라 그곳에 있는 천왕사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천왕사 성모상(지리산산신령)의 이마가 크게 긁혀있었다. 상처는 황산전투에서 이성계에게 패배한 왜구 잔당들이 천왕봉을 넘어 진주 쪽으로 도망가다가 칼로 화풀이한 흔적이었던 것이다.

유듀륜산기(遊頭輪山記)는 다산의 아들 정학연의 기행문이다. 정학연은 다산의 제자 황상과 함께 혜장선사를 따라 1805년 12월 24일부터 27일까지 3박 4일 간 대흥사에 머물렀다. 기행문은 대흥사와 두륜산을 둘러본 감회의 기록이다. -하늘 바람 소매를 휘몰아 가니/절정에서 한 차례 큰 숨 내 쉰다/ 다시금 지팡이 세워 꽂으니 푸른 허공 변함없이 그대로일세- 정학연이 가련봉에 올라 읊은 시의 한 구절이다.

휴일이면 ㅇㅇ산악회 리본을 배낭에 매고 행군하듯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과 골짜기에서 먹고 마시며 즐기는 행락객의 산사랑(?)에 산은 몸살을 앓는다.

정상에 오르는 기쁨도 좋고, 먹고 마시는 즐거움도 좋겠지만, 조용히 산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어떨까. 겸허한 마음으로 산길을 홀로 걸으며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우리의 옛 어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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