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호(농부)

 
 

언제부턴가 해남, 아니 여기저기 다른 시골길을 가다 보면 커다란 현수막을 문득 만나는 일이 있다. 두 종류의 것이 대부분이다. 하나는 누군가의 승진, 입학, 취직 등을 알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태양광 시설 반대 혹은 축사 반대 등이다.

자기 집 앞마당에 거는 거라면 모르겠으나 만인이 지나가는 길목에 거는 것이니 응당 같이 축하하자고 혹은 자랑하고 싶다고, 아니면 같이 반대하자고 혹은 싫어함을 알리겠다고 건 듯하다.

무엇에 대한 반대는 대부분 공동체의 집단적 의사를 담은 것이니 그렇게 반대함은 절박한 여러 사정이 있을 듯하다. 그런데 무엇에 대한 출세의 글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자랑이다.

아무개 아들, 9급 지방공무원 합격!,아무개 손자, 초급 순경 합격!,어디 출신 아무개 증손녀, 초등학교 교사 취임!,아무개 외손녀, 어느 회사 과장 진급!

여러 개의 광고판들과 함께 걸려 있는 저 글귀들을 보노라면 왠지 초라함을 느낀다. 과연 자랑할 만한 일인지, 그리고 공개적으로 밝혀둘 만한 일인지 잘 느낌이 안 온다. 물론 개개인들의 험난한 노력으로 딴 결실들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꼭 자랑할 만한 수준도, 그렇다고 박수칠 만한 일도 아닌 듯해서 하는 말이다.

9급 공무원은 이제 막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말단직이다. 옛날로 치면 마을 동헌에 근무하는 이방의 하급 조수 정도 계급이다. 이들이 점차로 성장하여 5급의 수준으로 올라 결제 라인에 서고, 3급의 이사급으로 올라 한 분야의 전체를 관장하고 그리하여 최종적으로는 이들 모두를 관장하는 1급이 되었다면,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을 것이고 각고의 노력이 뒤따랐을 것이니 경축할 만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단직 진급을 축하함은 그것 하나로 소위 팔자를 고쳤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니, 남아있는 우리를 초라하게 함은 물론 모두를 난장이로 만드는 완장처럼 느껴진다. 말단임에도 자기 자랑으로 공개함은 보기에 아름답지도 기쁘지도 않을 뿐더러 우리를 경쟁세계의 밀림에 집어넣는 느낌을 주어서 별로이다.

자랑과 승진이 난무하는 저 현수막은 왠지 욕망의 분출 덩어리처럼 느껴진다. 무얼해도 합격만 하면, 진급만 하면 좋다는 말처럼 보인다. 물질을 최고로 치는 또 다른 모습처럼 말이다.

후손이 큰 그릇이 되려면 그 앞에선 어른들이 잘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매우 겸손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래야 그 후손이 사람이 먼저 되고 크게 그릇에 담는 손이 된다. 자그마한 일로 과시하는 자리에서 어떻게 큰 인물이 나오겠는가. 조그마한 꿈, 소박한 꿈이 이루어졌다면 자랑할 일이 아니다. 개천에서 용이 안 나온다고 한탄할 일이 아니라 나의 환경이 물고기가 살만한 개천이라도 되는지를 보아야 한다. 물도 없는 건천에서 용을 쓴들, 별일도 아닌 일로 어깨에 힘주고 뻐기는 모습에서는 이미 용은커녕 뱀 꼬리도 어렵다.

9급으로 시작하여 40여년을 7급으로 봉직하다 마감하는 이가 있다면 진정 참된 사람이라고 아주아주 커다란 현수막을 걸어 드리고 싶다. 출세했다고 떠드는 모습은 거들먹거림이니, 그것은 속인들의 욕망만 출세한 것이다. 그 다음이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출세는 직위의 들어감이 아니라 오롯이 직위를 겸손하게 마감함이 출세이다. 학교 정규과정을 통해서는 결코 배워지지 않는, 인간됨의 공부와 청렴의 실천을 우러러 보았으면 한다.

시골에 산다고 꿈마저 오그라져서 내걸리는 모습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자랑하고 싶지만 멈추는, 가지고 싶지만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그런 무소유를 가득 담은 걸개그림이 걸린 모습을 보고 싶다.

더 크게 보자. 겸손해지자. 밝고 넓은 하늘을 초라한 자기 자랑으로 덮지 말자. 작은 일을 과시하지 말라. 그런 현수막을 걷어라. 우리를 존경하라. 우리가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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