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른 세속의 시비,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도다! 산은 산이오, 물은 물이나니, 그저 그 뿐일 뿐, 서방세계 안양국이 어디 있냐고 묻지를 마라! 흰 구름 걷히면, 그 곳이 바로 청산인 것을! - 임제 의현선사(臨濟 義玄禪師)불교는 마음과 현상세계를 구분하며, 현상세계보다는 마음세계를 우선한다. 마음세계는 우리 마음상태에 관한 것이고, 현상세계는 우리 외부적 상황이다. 선(禪)에서는 마음만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내 마음에 갈등만 없으면 이대로 극락이요, 천국이라고 이야기하며, 마음 상태보다는 외부적인 조건만을 주제 삼는 사람들에게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도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말이란 본래 그 말의 주체가 되는 존재의 권위와 능력과 자격과 책임을 담고 있습니다.그런데 말과 그 말을 담은 존재가 점점 신뢰와 권위, 능력을 잃어갑니다. 그 말로 그 사람을 알 수 있듯 말이 존재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하나님이 온 세상을 지으실 때 말씀으로 지으셨다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존재 근원과 가치가 창조주로부터 이루어졌다고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에게 말의 중요함과 그 영향력이 큰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가 말씀에 의하기 때문입니다.그
직역하면 "날은 저물고 길은 멀다"는 뜻이나 출처는 '오자서'란 사람이 주동이 돼 오나라와 초나라간의 세력싸움이 대를 이어가며 감정싸움으로 그 도가 지나칠 정도로 크게 벌어져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었다.오자서가 말한 것처럼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어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인데 지금 우리나라 처지를 보자 일본이 경제전쟁을 선포해놓아 우리 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고 하느님이 노하셨는지 가을태풍이 세 차례나 무참히 할퀴고 가 그 상처가 크며 거기다 아프리카 돼지 병까지 번지고 있어 온 국민이 힘
불교에서는 인과율에 의해서 현재의 삶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인과율은 부처님이 살았던 인도 사회가 갖는 계급사회적 전통을 바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과율 전체를 부정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들이 특별한 교육과 경험도 없는 상황 속에서 각 분야에 특출한 역량을 발휘하는 천재들을 보면 과거의 삶이 전혀 없다고 할 수도 없지 않을까요? 물론 이러한 견해는 저의 종교적 신념에 바탕한 의견입니다.인과율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메커니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팥 심은데 팥 나고, 콩 심은데 콩 난다&
모든 사람들은 '티 없이 깨끗한 본래(本來)마음'이 있다. 그것이 밖의 인연에 의하여 일어나는 '미혹의 티끌'로 덮이고 가려있는 것이다.'티 없이 깨끗한 본래(本來) 마음'이란 밖으로의 관심을 끊고 자신의 내면으로 관심(觀心)하고 있을 때, 생각 없이 존재하는 마음의 상태이다. 이때를 우리는 보통 "무심(無心)히 있다"하며, 이때 무심(無心)이란 마음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이렇게 자신 내면(內面)에 관심(觀心)하며 생각 없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선(禪)이다. 구름
소금과 빛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필요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금과 빛(촛불, 등잔불) 같이 스스로를 녹이고 헌신해야 하는데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직은 온전하지 못한 제자들을 향하여 선포하십니다.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아직은 부족한 이들을 향하여 먼저 소금과 빛이라고 인정해 주십니다. 부모나 선생이 아직은 미약한 자녀나 학생에게 너는 그리 못하니 그만두어라 하지 않습니다. 좋다. 잘하고 있다. 너는 잘할 수 있는 존재라고 인정하고 칭찬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이와 같습니
"어찌 이익이 되는 것만을 말하느냐"는 뜻으로 눈앞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을 비판하여 이르는 말이다.양혜왕이 맹자에게 어찌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함이 있겠습니까하고 물음에 맹자는 왕이 이로운 것만 챙기면 대부들은 봉읍을 이롭게, 평민들은 내 몸을 이롭게, 위아래 모두가 이로운 것만 취하게 돼 나라는 위태로워진다고 했다.장사꾼은 당연히 이를 추구하지만 공직자들까지 의를 뒤로하고 이만 챙긴다면 어찌되겠는가. 한데 우리는 '봉읍'에 해당되는 고관대작들은 국가관도 가치관도 없이 義는 온데간데없고 利로 가득 차있다.이번 장관
설, 단오와 더불어 국민 대명절인 추석이 지나갔습니다. 언젠가부터 명절이 여행 연휴가 된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원불교에서는 생의 존재적 가치를 부여해준 원인을 은혜라고 말하고 있으며 부모 은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 생의 근본을 제공했기 때문이며 미래로 나아가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추석은 한 해 결실을 거둬 가족과 함께 선조들의 근본적 은혜에 보답하고 그 분들의 유업을 기리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나무의 줄기와 가지가 아무리 풍성하다 하여도 그 뿌리가 썩어 있다면 그 나무는 더 이상
"밝은 달은 촛불이요 또 벗이어라, 흰 구름 자리 삼고 병풍 삼았네. 솔바람 소리, 찻물 소리에 맑고 서늘한 기운 일깨우네.흰 구름 밝은 달 두 벗만을 허락하니, 사람의 찻자리 이보다 더 좋으랴" 머릿속이 복잡한 사람들에게는 머리에 에너지가 몰려 압이 생기고 뜨거워진다. 그래서 열뇌(熱惱)라 하지 않았던가?세상살이가 욕심에 끌려 다니게 되면 발 딛고 사는 현실세계가 괴로움과 번뇌로 가득차게 된다. 그칠줄 모르는 탐욕은 천금을 손에 쥐고도 만족함을 모른다.그럴 때 조용히 눈을 감고 온몸에 힘을 빼며 무심히 있어야 한다.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신명기 30:16)아무런 관계하고나 계약이나 언약을 맺지 않습니다. 특정한 목적을 갖고 서로의 유익을 위해 관계를 맺고 계약(언약)을 합니다. 그리고 계약(언약) 안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하나님의 목적은 계약의 당사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증거 되고 사랑과 영광을 받으시기
홀아비, 과부, 고아, 의지할 곳 없는 늙은이를 가리키는 말로 사회적약자로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다.200여 년 전 다산은 목민심서 애민육조에서 환과고독은 관이 보살펴야한다며 노인들의 행복을 위한 탁견으로 合獨(합독)을 내세우며 황혼연애를 권장하신 분이셨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목민관이 합독 즉 홀아비와 과부를 재혼시키는 일에도 힘써야 한다는 대목이다.당대 우리 문화는 홀로된 여성에게는 평생 수절이라는 높은 도덕률이 적용되는 시절이었음을 감안하면 이 얼마나 선진적이고 남녀평등과 개인의 주체적 선택을 존중하는 인도적 삶의 바탕이
원불교 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종사는 "사회에는 또한 빈부 귀천의 차와 상하 선후의 차와, 유무식의 지우의 차등이 각각 있나니, 이 모든 관계를 통칭하여 강약이라 하나니라. 만일 강약 사이에 도가 없이 압박과 대항으로만 나아간다면 강자와 약자가 다 같이 재화를 입을 것이요, 설 도가 있어서 협조와 진화의 길로 나아간다면 그 사회는 평화와 번영을 이루게 되나니라"하시었습니다.지금 시점에 마음에 표준을 삼을 수 있는 법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강자라고 해서 늘 강자로 군림할 순 없고 지금 약자라로 해서 언제까지나 핍박 받고 있지
'너는 내말이 떨어지면 곧 스스로 회광반조(廻光返照) 할 것이며 다른 데서 구하지말 것이니 이것은 불조(佛祖)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임제록(臨濟錄)」'빛을 돌이켜 거꾸로 비춘다'라는 의미인 '회광반조'는 선종(禪宗)에서 언어나 문자에 의존하지않고 대상으로만 향하는 관심을 자신의 내면 쪽으로 돌이켜 비추어 보아 자기 자신을 늘 인지하고 마음과 영성을 인식하는 것을 놓치지 말라는 지침이다.우리는 눈을 뜨면서 잠들 때까지 대부분 외부로 향하는 관심이 거의 전부이다.그리고 일과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브리서 2:18)사람들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행복의 조건으로 찾아 헤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당연시하는 삶의 조건이 다른 누군가가 간절히 원하는 행복의 조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행복을 자신에게 없는 것에서 찾는다면 영영 얻기 힘들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행복할 수 있습니다.내가 가진 무언가를 남에게 나누어 주면 나도 더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마음이 공감입니다.
공자가 제자들과 채나라로 갈 때 양식이 떨어져 채소만 먹어가며 일주간을 버티는데 안회가 어디선가 쌀을 구해와 밥을 짓는다. 밥이 다될 무렵 공자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코끝을 스치는 밥 냄새에 부엌을 내다보게 됐는데 때마침 안회가 솥뚜껑을 열고 밥을 한 웅큼 집어 먹는 것을 봤다. 공자는 가장 아끼는 제자인데 이럴 수가 하고 실망했다.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안회야! 내가 방금 꿈속에서 선친을 뵙는데 밥이다 되거든 먼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라 하더구나" 뉘우치라고 하는 말이었다. 안회의 대답은 이 밥으로는 제사를 모실 수 없다
호사다마란 말이 있습니다. 좋은 일에는 어려움이 따른 다는 말로 해석됩니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목적과 희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어쩌면 내일에 대한 희망이 지금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일지도 모릅니다. 정말 절망적인 것은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에 포기하는 것입니다.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인 링컨 대통령은 "헛되이 빈고(貧苦)를 슬퍼하고 역경을 맞아 울기만 하지 말고, 미래의 밝은 빛을 향해 분투 노력하며 성공을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그의 인생은 계속되는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주저앉지 않고 가장
'깨달음'이 부처라는 이 말은 부처의 본질이며, 또한 부처님 가르침의 본질이다. 부처라는 말은 인도말 Buddha(붇다)를 발음으로 옮긴 것이며, 뜻으로는 깨달음 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에서도 한발 더 들어가야 그 본질과 핵심을 자세히 알 수 있다.깨달음의 보다 더 정확한 의미는? '깨어있을 때 알아지는 앎'이다. 그래서 부처를 정의할 때 '깨달은 자'이기도 하지만 '깨어있는 자', '눈뜬 자'라고도 정의한다. 사실 잠자던 사람이 깨어나 눈을 뜨면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5:3~4)아프리카 나미브 사막은 연 평균 강수량이 10여㎜ 정도밖에 안 되고, 새벽 기온은 영하, 한낮은 40도가 넘는 죽음의 땅입니다. 이곳에 '거저리'라는 풍뎅이 같이 생긴 벌레는 해가 뜨기 전에 모래 밖으로 나와서 300m 정도 모래 언덕 정상을 매일 올라가서 물구나무 선 채로 등을 활짝 폅니다.그러면 등에 있는 돌기에 안개의 수증기가 조금씩 달라붙어 물방울이 맺히고 등을 타고 흘러
▶官之法 唯有三事 '淸', '愼', '勤' 知此三者 則知所以持身矣(관지법 유유삼사 청, 신, 근 지차삼자 즉지소이지신의)명심보감 치정편관리된 자가 지켜야 할 법이 오직 세 가지 있는데 '청렴', '신중', '근면'함이다. 이를 알면 제 몸을 유지하는 바를 얻었다고 할 것이다.무릇 공직자란 신중, 근면은 고사하고 청렴이 으뜸으로 요구되는 실천 강령이다. 한데 현세대를 보라. 윗물이 너무 탁하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하류에 속한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
녹음이 짙어지는 계절입니다. 봄에는 새 생명 에너지를 뿜어내고 여름이면 성장에너지, 가을이면 성숙에너지, 겨울이면 함축에너지를 표출하면서 자연은 순환합니다. 끊임없이 순환하는 자연 속에서 정체되어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우리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마음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느껴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자연과 같이 항상 끊임없이 에너지를 내지 못하고 때론 좌절과 고통에 삶을 고된 것으로 기억하여 인생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스스로 근본을 잊고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통만이 전부인 것으로 오인하게 되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