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과 죽음에 이르기 전 보시를 통해서 자신의 재물을 남에게 베풀게 되면, 그것은 마치 자신의 집에 불이 났을 때, 집 밖에 내어놓았던 재물이 나에게 도움이 되듯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좋은 공덕이 된다.우리들의 재산은 가끔 도둑이 훔쳐가기도 하고, 힘 있는 자가 빼앗아가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하며, 마지막 몸을 버릴 때에는 자기 스스로 어느 것 하나 어찌할 수 없는 괴로움과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진실을 잘 아는 사람은 생전에 자신을 잘 지키면서도 남에게 베푸는 보시를 즐겨한다.그리하여 세상에 살면서 주변으
춘추시대 양나라 혜왕이 맹자에게 묻는다. 나는 마음을 다 해 백성을 다스리는데도 백성들은 내가 싫다고 이 땅을 떠나는데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했다.맹자는 비유를 들어 대답한다. 전하는 전쟁경험이 많아서 들이는 말씀인데 병사가 오십보 도망가 멈추나 백보 가서 멈추나 매 한가진데 오십보 도망간 병사가 백보 도망쳤다며 비웃고 있음이 가당치 않음을 아신다면 세상은 거기서 거기 갈만 하니 세금을 줄이고 선정을 펴셔야 한다고 고했다.그럼 25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정치판은 어떤가. 그때보다 낫다고 보는가?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요동치고
TV를 켜면 웬만한 시사프로그램에서 '포스트 코로나' 또는 '위드 코로나'라는 말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이 장기화되면서 종식을 기다리는 시대를 넘어 바이러스 창궐시대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바이러스는 생명진화와 더불어 우리 곁에 함께 존재해 왔다. 그런데 지금 와서 우리 인류의 위협이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생태계 공존질서 속에서 각각의 방어막이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포스트 코로나, 위드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나만을 생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7)남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며, 긍휼히 여기면 자신도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된다는 이치도 당연지사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것이 무엇이고 그 대상은 누구일까요? 긍휼히 여길 수 있는 대상은 자신보다 더 높고 더 가진 이가 아니라 나보다 못한 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간혹 그 대상에게 동정하고 적선을 하면서 긍휼히 여기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거나 착각을 합니다. 동정하고 적선하는 마음은 남을 나보다 못나다고 여겨서 아래로 내려보는
'얕은 개울물은 소리 내어 흐르고 깊은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 찬 것은 조용하다. 어리석은 자는 물이 반쯤 찬 항아리와 같고 지혜로운 자는 물이 가득찬 연못과 같다.' 가득 찬 것은 소리를 내지 않듯, 내면이 꽉 찬 사람은 침묵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애써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고 다만 행동으로 보여줄 뿐이다. 꽉 찬 사람은 자신 스스로 이미 충만하기 때문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남에게 잘 보이려 애쓸 것도 없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행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린도후서 1:9)사도 바울은 심한 환난과 고생을 겪으며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죽을 지경에 이르기를 여러 번 경험했으나, 이를 하나님만 의지하므로 견뎌낼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사람은 지위고하와 가진 재산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스스로를 의지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심과 같이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듯 큰 사망에서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을 믿고
「논어 위령편」중궁이 인(仁)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고 하셨다.7월은 연중 가장 더운 계절이어서 발끝 하나 움직이기가 싫다. 그것은 누구나 다 그렇다.자기가 윗사람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아랫사람에게 아무 일이나 함부로 시키는 일은 온당치 않다는 것, 사람의 마음은 다 거기서 거기여서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하기 싫다.'인'은 배려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은 배려가 있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회사는 고객의 입장에서, 임대인은 임차인의 입장에서. 요즘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내 마음을 여러 곳에서 뺏어가는데, 내 마음을 뺏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나에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가에서 공을 얘기하는 것은 '내가 그렇게 가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정말로 가치가 있냐'라는 것입니다.금강경에 '약견제상(若見諸相)이 비상(非相)이다'라고 말합니다. '비상'이라는 말은 '가치가 없다'는 말입니다. '약견제상비상'은 좋은 옷, 좋은 차, 좋은 자리 등 그 모든 상들 속에서 사람들이 사는데 실제로 그 모든
무릇 마음이라는 것은 한 곳으로만 모으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느니라!- 夫心者(부심자)는 制之一處(제지일처)하면 無事不辨(무사불변)이니라! 우리의 마음은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아 현실적으로 아무런 영향이나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 같지만 생각을 통해 대상과 목표를 정하고 마음을 모으면 생각 이상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돋보기를 통해 햇빛을 모으면 평상시 햇빛 이상의 큰 에너지를 얻어 사물을 태우는 힘도 일으킬 수 있듯이 우리들의 마음도 생각이라는 도구를 통해 한 주제와 목표에 마음을 흔들림 없이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리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디모데전서 5:24~25)지인의 온라인 상에서 본 글입니다."성격은 '얼굴'에서, 생활은 '체형'에서, 본심은 '행동'에서, 감정은 '음성'에서, 인간성은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대요."우리의 삶의 모든 모습과 우리 안에 선과 악도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반드시 드러날 수밖에 없습
瘟疫流行 蚩俗多忌 撫之療之 裨無畏也(온역유행 치속다기 무지요지 비무외야) 「목민심서」염병이 유행할 때 어리석은 풍속이 꺼리는 것이 많으니 어루만지고 치료해 주어서 두렵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조선조 후기 때 다산은 목민심서 애민 편에서 병든 환자를 우대해야 한다고 하면서 괴질 병이 유행하면 의당 관에서 구조해야 하는데 예방법으로 환자와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하고 치료할 때도 바람을 등지고 서야 하며 성산자라는 약을 지어 백성들에게 나눠먹여야 한다고 가르쳤다.당시 의료시설은 열악해 괴질이 유행하면 인명피해가 커 방제대책을 구체적으로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한 민족 전쟁의 상처가 분단의 아픔으로 이어져 아직까지 아물지 않고 있는 세계 유일의 국가이다. 한국전쟁은 우리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수많은 비극을 만들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하고 이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후손들의 장래를 위해 이 땅, 이 나라를 지키고자 당신들의 목숨까지 내던진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그에 맞는 의식과 사고를 가져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 끊임없이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하셨다.지금의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의 모든 고통, 내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이 세상 어느 것 하나 똑 같은 것 없이 홀로 존귀하므로 독존(獨尊)입니다.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똑 같은 것 없이 오직 나뿐이라는 유아(唯我)입니다.우리 모두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나와 똑같은 대상이 없으며, 온 우주 구석구석을 둘러본다고 할지라도 나와 똑같은 상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온 세상 온 우주에서 오직 하나밖에
반포지효하면 예로부터 널리 알려진 말로 '까마귀는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자 새'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명성과는 달리 흉조로 여긴다.까마귀와 까치는 외모가 엇비슷한데 까치는 생김새가 고와 길조로 여기고, 까마귀는 상대적으로 모양새가 흉하고 색이 검고 울음소리마저 음침한데다 시체를 먹는 습관 때문에 흉조로 업신여겨왔다.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고려 때는 三足烏(삼족오)로 길조였고, IQ가 70으로 도구를 이용할 만큼 영리한 새다. 자신을 키워준 어미 새가 늙고 병들어 먹이사냥을 못하면 먹이를 물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베드로전서 4:10)어디에 속하였든지, 무슨 일을 맡았던지 주인 의식이 없어도 또는 자기만 주인이듯 행하여도 문제가 생깁니다. '사도'는 가장 귀한 직분이며 역할입니다.그런데 이 사도와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가 '청지기'입니다. 둘 다 보냄을 받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종이나 품꾼과는 달리 정해진 권리 안에서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고, 주인에게 그 자격을 위임받아 대신할 수 있는 직분이 청지기이며 사도입니다
코로나19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동안 썰렁했던 거리 분위기도 달라지고, 갑갑한 마음을 해소하려는 듯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들로 나가는 모습을 발견한다.그러나 방역당국은 경각심을 갖지 않으면 언제든지 바이러스 감염증이 다시 창궐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열반 전 유촉의 말씀으로 이 세상이 낙원으로 변화하기 위해선 "법은 일반 동지의 앞에 서서 세우고, 공은 일반 동지의 뒤에 서서 양보하는 알뜰한 일꾼들이 많이 나오게 하라"고 하셨다.지금 한국이 세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공동정신에 바탕하여 국민
욕망에서 슬픔과 분노가 생긴다. 욕망에서 슬픔이 생기고 욕망에서 분노가 생긴다. 욕망에서 벗어난 이에게 슬픔이 없는데 어찌 분노가 있겠는가 ? 「법구경」욕망은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며, 자기 이익적인 의지이다. 그것만이 잘되고 잘 성취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범부중생인데, 상대가 있고 상황이 있는 세상사에서 그렇게만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지 않는가? 그러다 보니 좌절하여 포기하고 실망하여 슬픔이 생기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발할 때 분노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아무런 생각, 아무런 의지를 일으키지 말라는 말인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자신들의 편의와 실속을 차리는 자들의 상을 엎으며 내쫓았다. 그러나 성전 안에 편히 드나들 수 없는 보지 못하거나 잘 걷지 못하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어 치유해주셨다.(마태복음 21:12~14) 요즘 코로나19 상황과 총선의
4월은 원불교에서는 매우 특별한 달이다.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대각을 하고 원불교를 창교한 날이 4월 28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4월을 대각의 달, 깨달음의 달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 시국이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재난상황을 맞이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 더욱이 감염증 확산이 장기화되면서 가정·사회·국가·경제적으로 많은 고통과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진 않을 것이다. 이 또한 과정이고, 다 잘될 것이라고 믿는다.사회와 환경이 어렵다고 마음까지 침체되면 희망의 내일은 결코 도래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어, 봄이 왔으되 봄같이 않구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이 말은 중국의 전한시대 천하일색 왕소군이 쓴 원한의 시인데, 당시 화가 모연수의 속임수에 아무 잘못도 없이 억울하게 흉노국 호안야에게 볼모로 끌려가 불운한 일생을 그 곳에서 쓸쓸히 보낸다.봄이 되었는데도 마음은 아직 봄같이 않다. 춥고 배고픈 겨울을 견뎌온 사람이면 따뜻한 봄이 간절할 것이고, 억압과 부자유 시절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면 해방과 자유를 갈망할 것이다.지금 우리는 허기짐도 아니요, 외세의 억압도 아닌 코로나19로 격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