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내리는 장맛비를 보노라면 툇마루와 개떡의 추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어릴 적 살던 초가집은 안방을 들어가려면 거쳐야 하는 툇마루가 있다.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툇마루에 앉아 마당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우두커니 쳐다보며 어머니가 해주신 개떡을 먹곤 했다. 개떡은 설탕이 귀했던 시절 감미료인 사카린을 넣은 밀가루 반죽을 솥에 쪄서 만든다. 먹을 게 별로 없던 시절 개떡은 장맛비와 찰떡궁합이자 호사이기도 했다. 개떡에 쓰이는 '개'는 동물이 아니라 '형편 없는'이라는 의미이다. '개떡 같은 인생'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
금융기관은 고객이 맡긴 돈으로 더 높은 이자를 붙여 빌려주며 '이자 따먹기' 장사를 하는 게 주업(主業)이다. '기관'(機關)이라는 표현은 경제의 실핏줄 역할을 하는 돈을 운용하며 국가의 기간(基幹)이 되고, 따라서 아주 높은 수준의 공공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붙여졌을 것이다. 열차를 끄는 기관차나 군대에서 주력화기인 기관총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기관'의 무게감이 피부로 다가온다.금융기관은 공익성도 아주 높기에 수조 원의 떼돈을 벌어 직원들이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는 소식이 일반인에게는 달갑지 않게 다가온다. 높은 예대율(예금과 대출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은 수요가 넘치면 올라가고 공급이 넘치면 떨어진다. 시장가격은 수급이 균형을 이루는 상태에서 결정된다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개념인 수요공급의 법칙이다. 이런 논리가 시장에서 유효하게 작동하려면 재화나 서비스의 질이 동일하고 수급에 대한 정보도 완전해야 한다. 현실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공공재는 물론이고 기업이 만들어내는 물품도 소비자가격이 결정되어 시장에 나오기 때문에 수요공급의 법칙이 끼어들 틈이 별로 없다. 시장 논리가 그런대로 적용되는 분야가 주식이나 농수산물이다.조선 후기 소설에는 수요공급 법칙을 악용
지방의회는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실종된 지 30년 만인 1991년 부활한다. 4년 뒤인 1995년 7월 민선 1기 광역·기초자치단체가 출범하면서 지방자치의 양대 축이 완성된다. 이런 형식을 갖춘 지방자치가 내일이면 29년째에 접어든다.흔히 민주주의를 얘기할 때 160년 전인 1863년 링컨이 게티스버그에서 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연설이 자주 인용된다. 촌철살인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에 빗대 지방자치는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방자치는 부작용도 낳았으나 주민의 삶과
캘리포늄처럼 스스로 핵분열하는 물질로 얻어진 중성자를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등 무거운 원자와 충돌시키면 원자핵이 쪼개지고 2~3개의 중성자가 방출된다. 이런 충돌을 연쇄적으로 하면 우라늄 원소가 핵분열하면서 줄어든 질량만큼 막대한 열에너지가 발생한다. 원자력 발전은 이런 열에너지로 냉각수를 가열시켜 나오는 고온의 수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원자력발전소는 경제성에서 비할 바 없이 탁월하지만 핵폐기물 처리문제와 사고 시 방사능 누출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최악의 원전 사고는 구 소련 당시인 1986년 4월 우크라이나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한다는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 있다. 술잔 안의 일정한 높이에 관이 달려 술잔을 가득 채우려고 하면 되레 술이 남김없이 빠져나가게 만들어졌다. 중력과 기압차를 이용한 사이펀(Siphon) 작용이다. 술이 넘치면 중력에 의해 아래로 흘러내려가지만 나중엔 기압차로 인해 나머지 술이 빠져나가게 된다. 입으로 호스를 한 번 빨아들인 뒤 물이나 기름을 위쪽에 있는 다른 곳으로 옮기는 원리도 마찬가지이다.계영배는 과도한 음주를 하지 말라는 뜻과 함께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도리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전라도 이름은 1000년 넘게 거슬러 올라간 고려 현종 9년(1018년)에 처음 등장한다. 당시 큰 고을인 전주목과 나주목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그 이전에는 전북을 강남도, 전남을 해양도로 불렀다. 광주와 해남을 비롯한 전남 9개 시·군에 도시가스를 공급하고 있는 해양에너지의 사명(社名)도 옛 이름에 연유한다.경상도(경주+상주), 강원도(강릉+원주), 충청도(충주+청주), 평안도(평양+안주), 황해도(황주+해주), 함경도(함흥+경성)도 전라도와 비슷하게 이름 지어졌다. 다만 경기도는 도읍이던 개성 주변인 경현(京縣)과 다소
서래질을 마치고 황토물로 넘실대는 해남 들녘은 2~3주 지나면 연초록의 어린 모 천국으로 변신할 것이다. 영농철을 맞아 마침 단비도 내려 아전인수(我田引水)의 볼썽사나운 걱정도 덜게 됐다.모내기가 이미 출발을 알렸고 마늘, 양파 등의 밭작물은 수확에 들어가면서 해남의 농촌은 바야흐로 농번기에 접어들고 있다. 모내기 한철을 보내고 성하(盛夏)의 계절이 다가오면 휴가를 맞아 농촌을 찾은 도시민에게 잠시나마 목가적(牧歌的) 풍경도 선사할 것이다.이런 농촌 들녘의 평화로운 모습에는 농민들의 땀이 배어 있고 다른 한 켠에는 애간장도 녹아있다
국립5·18민주묘지(신묘역)가 자리잡은 곳은 흔히 망월동으로 알려졌으나 광주 북구 운정동이다. 5·18 희생자들이 처음 묻혔던 바로 옆 망월묘역(구묘역)도 수곡동이지만 인가가 있던 인근의 망월동 이름에서 따 불리고 있다. 이곳을 경유하는 시내버스 518번은 출발지와 권역의 규칙에 따르지 않는 특별번호로 정해졌다. 비슷한 연유의 노선버스는 4·19혁명을 주도한 광주고를 지나는 419번, 무등산 해발 고도를 상징하는 1187번이 있다.5·18 희생자들은 구묘역에서 17년간 잠들다 지금의 신묘역으로 이장돼 26년의 세월이 다시 흘렀다.
대흥사 경내에 자리한 유선관은 109년 역사를 간직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여관의 명함을 갖고 있다. 유선관 초입의 '유선 카페'에 들어서면 20여 일 전부터 벽에 내걸린 달항아리 그림이 있는 듯 없는 듯 수수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최영욱(59) 작가의 달항아리 그림이 땅끝에 머문 데는 사연이 담겨 있다. 최 작가의 아내가 유선관에 머물면서 카페에 걸린 그림이 유선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남편의 작품을 기증한 것이다. 최 작가는 빌 게이츠 재단이 그림 세 점을 소장 작품으로 구입해 유명세도 탔다.달을 닮
정당은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정권 획득을 목표로 뭉치는 집단을 이른다. 시민단체나 이익단체처럼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정권 획득'을 목표로 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이런 목표를 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이 무려 47개나 된다. 이 중 정치인이 국민보다 거지가 돼야 한다는 취지의 거지당처럼 명칭이 장난스러운 정당도 있다. 정당 가운데 1석 이상의 의원이 있는 정당이 6개이고, 더불어민주당(170석)과 국민의힘(115석)이 300명 전체 의원의 95%를 차지하고 있다.정당에서 중
어느덧 계절의 여왕 5월의 문턱에 서 있다. 5월이 오면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접했던 이양하(1904-1963) 선생의 수필 '신록예찬'이 으레 떠오른다.'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四時)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나타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萬山)에 녹엽(綠葉)이 싹트는 이때일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
예부터 전라도에 '3성3평(三城三平)'이란 말이 내려온다. 3성은 장성(長城), 곡성(谷城), 보성(寶城)이고 3평은 담양 창평(昌平), 나주 남평(南平), 함평(咸平)을 이른다. 산세가 비교적 험준하거나 평야가 많은 지형적 특성에서 따온 지명을 어찌어찌 묶어 만들어낸 말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기질이 유독 강했던 모양이다. 기질이 드센 배경에는 '3성'의 고개에 산적이 많이 도사리고 있었고 '3평'의 너른 들녘에서 나오는 곡식을 약탈하려는 왜구가 자주 출몰한 때문이라고 한다.이런 연결고리가 부족하더라도 나는 전남의 22개 시군에서 해
산스크리트어(범어·梵語) '아비댜'는 번뇌로 진리에 어두운 마음 상태를 뜻한다. 불교 경전에 쓰인 이 단어는 한자권에서 무명(無明)으로 번역된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마음속 번뇌가 드러난다고 여긴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고 부른다. 머리카락은 깎아도 계속 자라나는 속성이 끝없이 솟아나는 번뇌와 닮은꼴이다. 머리숱은 8만~ 10만 개에 이르고 하루에 0.2~0.3㎜ 정도 자란다고 하니, 머리숱만큼의 번뇌가 생과 사를 거듭하는 윤회와 엇비슷하다는 것이다.이런 연유로 불교에서 머리카락을 깎는, 곧 삭발(削髮)은 세속의 번뇌와 단절을 의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을 지키는 달마산과 미황사는 이름만큼이나 신비함이 묻어난다.달마산(達摩山)은 중국에 선종의 씨앗을 뿌린 달마대사의 법신(法身·진리의 몸)이 머문다는 데서 유래한다. 산스크리트어 '달마(또는 다르마)'는 최고의 진리라는 의미로 한자에서 법(法)으로 번역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중국 남송시대(1264년) 한 고관이 달마대사가 바다를 건너와 안주했다는 달마산을 찾아 예를 표하고 화폭에 담아갔다는 기록이 있다.미황사(美黃寺)의 창건 설화도 범상치 않다. 신라 경덕왕 시대(749년) 불상과
지난달 해남군에는 지역민의 생활과 밀접하고 그래서 민감한 내용의 중앙부처 공문 2개가 첨부 내용과 함께 내려왔다. 하나는 전남도를 거친 행정안전부의 '2023년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지원 사업 종합지침(안내사항)'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보낸 '재생에너지 발전시설 입지 가이드라인'이다.중앙부처의 공문은 지역사랑상품권 가맹점과 태양광 시설 이격거리의 기준을 정한 지침이다. 한 마디로 전국 지자체마다 달리 운영되는 기준을 하나로 통일시키겠다는 생각이다. 큰 틀에서 취지에 공감이 가더라도 지역의 다양한
우리는 두 개의 나이를 갖고 살아간다. 하나는 달력나이, 다른 하나는 신체나이다. 달력나이는 태어난 해를 기점으로 햇수로 따지기에 강제적이다. 세월의 흐름을 통제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반면 건강나이라고도 하는 신체나이는 건강 상태나 노화 정도에 매겨진다. 생활 습관이나 관리에 따라 '30세 중년'이 되기도 하고 '60세 청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선택적이다. 달력나이에 0.7이나 0.8을 곱하면 신체나이라는 계산법이 회자하기도 했다. 이 계산법을 적용하면 건강한 60세는 0.7을
바야흐로 만물이 생동하는 3월이다. 이번 주를 시작한 6일은 삼라만상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다. 24절기의 세 번째인 경칩(驚蟄)을 직역하면 '땅속에 숨어 있던 벌레(蟄)가 풀린 날씨에 놀란다(驚)'는 의미이다.경칩이 새봄의 시작을 알리자 생명을 잉태하는 대지가 꿈틀한다. 대지는 곧 땅이자 흙이다. 내일(11일)은 봄의 기운을 받은 흙의 소중함을 되새기자는 '흙의 날'이다. 3월 11일을 '흙의 날'로 제정한 데는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초봄에 농업의 뿌리인 흙의 가치를 알고 보전
'80년 5월'이 두 달 보름 남짓 지나면 만 43년이 된다. '5·18 둥이'가 어느덧 나이 지긋한 중년에 접어들고, 7년이 다시 흐르면 반세기라는 세월의 무게가 더 얹어질 것이다. 5월도 역사의 한켠으로 더 내려앉고 시나브로 가물가물해지리라.이런 안타까움 속에 5월의 진상규명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그 틈새를 '피해자 코프레스'가 파고들고 있다. '5월 광주'에 투입된 특전사동지회가 얼마 전 일부 5월 단체와 합작한 '화해 선언식'이 거센 후폭풍을 몰고
'튀르키예' 하면 아시아인지, 유럽인지 정체성이 모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지정학적으로 두 대륙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발을 들여놓는 길목이다. 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에 놓인 3개의 다리야말로 진정한 동서양의 가교라 할 만하다.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은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1930년부터 지금의 지명으로 불린다. 동서양 문화가 융합한 비잔틴 문화의 중심이기도 한 이스탄불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말 그대로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