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한다는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 있다. 술잔 안의 일정한 높이에 관이 달려 술잔을 가득 채우려고 하면 되레 술이 남김없이 빠져나가게 만들어졌다. 중력과 기압차를 이용한 사이펀(Siphon) 작용이다. 술이 넘치면 중력에 의해 아래로 흘러내려가지만 나중엔 기압차로 인해 나머지 술이 빠져나가게 된다. 입으로 호스를 한 번 빨아들인 뒤 물이나 기름을 위쪽에 있는 다른 곳으로 옮기는 원리도 마찬가지이다.

계영배는 과도한 음주를 하지 말라는 뜻과 함께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도리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과 상통한다. 과유불급은 논어에 나오는 고사성어이다. 제자 자공이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더 현명한지 묻자 공자는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자공이 그럼 자장이 더 낫다는 것이냐고 하자 공자는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고 했다.

조선 후기 실존 인물인 거상 임상옥(1779~1855)은 계영배를 늘 곁에 두었다고 한다. 임상옥은 최인호 작가가 그를 모델로 한 소설 '상도(商道)'를 2001년 발표해 널리 알려졌고, 이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해 그해 MBC 사극으로 방영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소설에는 임상옥이 인삼교역권을 거머쥐고 거부로 도약하게 한 든든한 배후 이야기가 나온다. 젊은 시절 당대의 세도가 박종경과 대좌하는 자리에서 "하루에 몇 사람이 남대문을 출입하는지 알겠는가. 누구는 2000명, 누구는 7000명이라고 하는데"라는 질문을 받았다. 임상옥은 "단 두 명입니다. 대감께 이(利)와 해(害)를 끼칠 사람 둘이 있을 뿐입니다. 나머지는 쓸모가 없으니 셀 필요도 없습니다"고 답했다. 박종경이 무릎을 탁 치는 순간 임상옥의 운명은 바뀌었다. 또 하나는 청나라에서 인삼을 다 팔고 간 술집에서 술주정뱅이 아버지 때문에 팔려 온 아름다운 여인(장미령)을 만났다. 임상옥은 돈 때문에 사람을 이런 곳에 팔 수 있냐며 500냥을 주고 장미령을 구해냈다. 장미령은 나중에 청나라 고관대작의 첩이 되어 임상옥이 장사하는 데 많은 인맥을 만들어 주었다.

임상옥은 어마어마한 부를 쌓았지만 번 돈의 80%만 갖고 나머지 20%는 인삼 경작 농가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썼다고 한다. 그는 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는 사람을 남겨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었다. 여기서 사람은 곧 신용과 맞닿아 있으며, 수단이 되지 않고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다.

요즘엔 사람 자체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은 경우가 종종 들려온다. 사람 장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해남에는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농어가와 수산물 가공공장에 많이 배치되어 있다. 계절근로자는 일감이 없으면 근로의 유연성을 위해서 다른 농어가에 파견돼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런데 군민을 대표하는 어느 공인의 집안은 고용한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변경 허가도 받지 않고 다른 농가에서 일하도록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계절근로자의 일당 일부를 챙기기까지 했다고 한다. 아무리 외국인이라고 하지만 사람 장사를 한 것이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이국(異國)에서 땀 흘리는 외국인 근로자를 보면 애잔한 느낌이 다가온다. 그들이 없다면 농촌 현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토록 소중한 외국인을 오로지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서야 되겠는가.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