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을 지키는 달마산과 미황사는 이름만큼이나 신비함이 묻어난다.

달마산(達摩山)은 중국에 선종의 씨앗을 뿌린 달마대사의 법신(法身·진리의 몸)이 머문다는 데서 유래한다. 산스크리트어 '달마(또는 다르마)'는 최고의 진리라는 의미로 한자에서 법(法)으로 번역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중국 남송시대(1264년) 한 고관이 달마대사가 바다를 건너와 안주했다는 달마산을 찾아 예를 표하고 화폭에 담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미황사(美黃寺)의 창건 설화도 범상치 않다. 신라 경덕왕 시대(749년) 불상과 경전, 검은 돌을 실은 돌배(石舟)가 금인(金人·금빛의 부처나 불상)이 젓는 노를 따라 달마산 아래 포구(지금의 갈두항)에 정박했다. 검은 돌은 이내 갈라지더니 검은 소 한 마리가 나왔다. 의조화상(儀照和尙)은 꿈에 나타난 금인의 뜻을 받들어 불상과 경전을 싣고 가던 소가 처음 누웠던 자리에 통교사(通敎寺), 마지막 머문 자리에 미황사를 세웠다. 미황사는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에서 '미', 금인에서 '황'을 따 이름 지어졌다. 부침을 거듭하다 사실상 버려졌던 미황사는 34년 전인 1989년 현공 스님과 금강 스님이 흔적을 쫓아 복원함으로써 오늘의 사찰로 되살아났다.

땅끝의 빼어난 산, 아름다운 절을 잇는 달마고도(達摩古道)를 얘기할 때 20년간 미황사 주지를 지낸 금강 스님(현재 중앙승가대 교수)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구상하고 실행했기 때문이다.

달마산은 험한 바위산으로 등반사고가 잦고 이 때문에 표지판, 계단, 밧줄 등 안전 시설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나중에 출렁다리나 케이블카가 설치될 수 있고, 훼손 우려도 더욱 커졌다. 그래서 생각한 게 미황사를 기점으로 한 옛길의 연결이다. 달마산 열두 암자를 이어주던 옛길을 이용해 스님뿐 아니라 송호·통호 등 땅끝마을 주민들이 절이나 현산 월송장을 왕래했다. 금강 스님은 3분의 1 정도는 이미 나 있고, 나머지는 조금만 손을 보면 달마산을 한 바퀴 도는 길이 만들어질 것으로 여겼다.

당시 이낙연 전남도지사가 마침 미황사를 방문하자 데크 등 인공조형물과 포클레인 등 중장비 없이 옛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금강 스님이 감독을 맡으면 지원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 후 해남군청 관계자와 설계자를 동반해 지리산 둘레길을 다녀온 뒤 옛길 조성에 들어갔다.

2017년 11월 정식 개통된 4개 코스, 17.74㎞의 달마고도는 곡괭이, 삽, 지게, 호미, 그리고 사람 손으로만 만들어진 흙길과 돌길이다. 40명이 2년간 흘린 땀이 미황사와 비슷한 높이의 달마산 7부 능선을 횡단하는 둘레길에 배어있다. 금강 스님은 중국 차마고도(茶馬古道), 일본 구마노고도(熊野古道)와 함께 3대 고도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달마고도의 이름을 지었다.

주말인 지난 25일 미황사와 달마고도 일원에서 4년 만에 힐링축제가 열렸다. 달마고도는 세파(世波)에 찌든 몸과 마음의 때를 씻어내는 치유와 염원의 길이다. 달마고도를 걸으면 기암절벽과 바다, 마을, 들판, 섬이 줄줄이 눈에 들어온다. 20개에 이르는 돌길인 너덜지대도 명품이다.

그렇다지만 한국의 산티아고로 불리기에는 어딘지 부족하다. 달마산에서 시작해 두륜산, 주작산, 덕룡산, 만덕산, 백련사, 다산초당으로 연결되는 길이 만들어지면 세계적인 달마고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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