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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이나 서비스 가격은 수요가 넘치면 올라가고 공급이 넘치면 떨어진다. 시장가격은 수급이 균형을 이루는 상태에서 결정된다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개념인 수요공급의 법칙이다. 이런 논리가 시장에서 유효하게 작동하려면 재화나 서비스의 질이 동일하고 수급에 대한 정보도 완전해야 한다. 현실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공공재는 물론이고 기업이 만들어내는 물품도 소비자가격이 결정되어 시장에 나오기 때문에 수요공급의 법칙이 끼어들 틈이 별로 없다. 시장 논리가 그런대로 적용되는 분야가 주식이나 농수산물이다.

조선 후기 소설에는 수요공급 법칙을 악용한 내용이 나온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은 매점매석으로 떼돈을 번 허생의 이야기이다. '돈 못번다'는 아내의 구박에 집을 나온 허생은 한양의 부잣집을 찾아가 요즘으로 치면 수억 원의 가치인 1만 냥을 빌린다. 그 돈으로 시장에 나온 과일을 죄다 사들이자 품귀현상으로 10배로 치솟은 가격을 받고 되판다. 이젠 제주도로 건너가 갓을 만드는 말총을 싹쓸이하고, 여기서 또 몇 배를 남기고 팔아 거부가 된다는 줄거리이다. 그때도 시장가격을 왜곡시키는 매점매석을 못하도록 했다고 하니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사회악으로 여겼을 것이다.

지금의 시장에서 농수산물 가격만큼이나 수요공급의 법칙이 나름대로 작동하는 분야도 흔치 않다. 조금의 과잉생산만 되더라도 가격이 급락하고, 생산량이 조금만 줄면 급등한다. 그런데 가격이 급등하면 수입산이 물밀듯이 쏟아져 조정하지만 급락하면 달리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다. 결국 애먼 생산자만 피해를 떠안는다.

요즘 마늘가격을 보면 수요공급의 논리로는 설명이 잘되지 않는다. 수확기인 지난달 폭우로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었고, 중국의 작황 부진으로 수입 물량(깐마늘)도 거의 없다.

해남에서 남도종 마늘 주산지는 송지, 북평, 북일 등으로 대부분 농협에서 수매한다. 이미 끝난 마늘 수매가는 농협별로 다소 다르지만 최상품이 1㎏에 3500원(중품 2800원, 하품 2300~2400원)으로 지난해 5600원보다 40% 가까이 폭락했다. 이달 들어 경매가 시작된 경남 창녕의 마늘(대서종) 상품 경락가도 1㎏당 3000원 안팎으로 지난해 5400원보다 40% 이상 떨어졌다. 3500원 수준인 최저 생산비도 못 건졌으니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올해 마늘 생산량이 작황 부진으로 크게 줄었다는데 가격은 왜 폭락할까. 농수산물처럼 수요공급의 법칙이 민감하게 작동하는 품목도 드문데 왜 거꾸로 갈까. 농민들도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경제학에서 수요와 공급은 '의향'이 내재한 개념이다. 지금의 마늘값 폭락도 이런 논리를 대입해야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정부는 마늘가격이 뛰면 언제라도 저율관세할당(TRQ) 수입에 나서고 비축분을 시장에 풀겠다고 한다. 여기에다 마늘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거나 재고도 많다는 잘못된 정보가 유언비어처럼 떠돈다. 마늘값을 주저앉게 한 요인이다.

농민들은 헛농사를 지었다며 최저 생산비 보장과 재해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메아리 없는 아우성에 한숨만 쌓여간다. 정부는 농수산물 가격이 뛰거나 뛸 것으로 예상되면 수입 물량 확대부터 나선다. 반대로 폭락하면 뒷짐만 진다. 이런 농정(農政)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좀 더 고민하고 농민을 생각하는 정부는 언제나 들어설까.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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