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하면 아시아인지, 유럽인지 정체성이 모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지정학적으로 두 대륙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발을 들여놓는 길목이다. 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에 놓인 3개의 다리야말로 진정한 동서양의 가교라 할 만하다.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은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1930년부터 지금의 지명으로 불린다. 동서양 문화가 융합한 비잔틴 문화의 중심이기도 한 이스탄불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말 그대로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이다.

튀르키예에는 구약과 신약성경에 기록되거나 성인이 활동한 장소가 무수히 많다. 그래서 기독교인의 성지순례지일 뿐 아니라 관광지로도 인기가 높다. 창세기(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8:2)에서 노아의 방주가 정상에서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던 곳이 튀르키예에서 가장 높이 솟아있는 아라랏 산(해발 5137m)이다. 시리아와 접경에 위치한 하란은 이스라엘 조상 아브라함이 아버지(테라)를 따라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에 살았던 곳이다.(창세기 11:31~32) 신약인 사도행전에는 사도 바울이 다소(지금의 테르수수)에서 태어났다고 수차례 적혀 있다. 바울은 안디옥(안타키아)을 전도 여행의 전초기지로 삼았고, 예수의 제자들이 이곳에 교회를 세우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했다. 안타키아는 앞서 알렉산더 왕이 페르시아 다리우스 왕과 일전(이수스 전투)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바울이 옥중에서 에베소(에페소스), 골로새(호나스)에 보낸 서신이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이다.

우리나라의 그 많은 '안디옥 교회'는 바울이 전도의 거점으로 삼았고 사실상 첫 교회가 세워진 안디옥을 본받아 이름 지어졌다. 그런 안디옥, 지금의 안타키아가 강진으로 가장 많은 인명피해가 나면서 큰 슬픔에 잠겼다. 118명으로 구성된 한국 긴급구호대가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흔히 한국과 튀르키예는 형제국가라고 한다. 두 나라가 피를 나눈 사이라는 것이다. 6·25 전쟁 당시 미국과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해 우리나라를 도왔기 때문에 '형제의 나라'라고 한다면 어딘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이런 이유라면 16개 모든 참전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불러야 한다.

두 민족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접점이 있다. 고구려와 돌궐은 처음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나중에 형제 관계의 강력한 동맹을 맺고 당나라에 맞섰다. 두 민족은 흥망의 시대에 번갈아 가며 기층민중(基層民衆)을 이뤘다. 이때 피가 많이 섞였다고 봐야 한다. 유목민족인 돌궐은 이후 서진(西進)과 정착을 거듭해 유럽의 관문인 튀르키예에 자리 잡고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튀르크의 한자 표기가 곧 돌궐이다. 영어식 표기인 터키(Turkey)는 칠면조이자 속어로 '겁쟁이'를 뜻해 지난해 국호를 '튀르크인의 땅'이라는 튀르키예로 변경했다.

대지진으로 고통받고 있는 튀르키예를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이 우리나라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땅끝 해남에서도 아픔에 동참하고 나섰다. 이달 들어 매주 금요일에 열리는 매일시장 경매행사 수익금을 구호 성금으로 기부하고 해남군도 공직자를 중심으로 한 모금 운동에 나섰다. 이젠 우리가 비탄에 빠진 튀르키예에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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