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해남군에는 지역민의 생활과 밀접하고 그래서 민감한 내용의 중앙부처 공문 2개가 첨부 내용과 함께 내려왔다. 하나는 전남도를 거친 행정안전부의 '2023년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지원 사업 종합지침(안내사항)'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보낸 '재생에너지 발전시설 입지 가이드라인'이다.

중앙부처의 공문은 지역사랑상품권 가맹점과 태양광 시설 이격거리의 기준을 정한 지침이다. 한 마디로 전국 지자체마다 달리 운영되는 기준을 하나로 통일시키겠다는 생각이다. 큰 틀에서 취지에 공감이 가더라도 지역의 다양한 실정이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이다. 지방자치는 그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지방 정부에 실질적이고도 포괄적인 권한을 주자는 것이나 이번 공문은 여기서 한참 벗어난 행보로 다가온다. 보수 정권의 이념이 2개의 공문에 고스란히 묻어났다고 봐야 할까.

이를 받아든 해남군은 고민에 쌓였다. 따르자니 애써 설정한 기준을 뜯어고쳐야 하고 그러면 주민의 생활에 큰 파장을 몰고 온다. 무시하자니 불이익이 담긴 딱지가 눈에 아른거린다. 관련 법이 고쳐지면 어쩔 수 없다지만 지침은 어디까지나 지침이기 때문이다.

먼저 지역사랑상품권 가맹점 지침을 들여다보자. 골자는 연 매출 30억 이하만 가맹점 등록을 허용하되 소급 적용(기준에 안 맞으면 등록 취소)해 늦어도 5월부터 시행하고, 월 구매한도(할인 포함) 70만 원 등은 즉시 적용하도록 했다. 소상공인 지원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지역사랑상품권 취지에 맞게 운용하라는 주문이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해남은 당장 국비 지원(10% 할인 시 5%로 올해 27억8000만 원)을 포기해야 할 판이다. 여기에 또 다른 불이익이 어떻게 뒤따를지 모른다. 해남에서 '연 매출 30억 이상 가맹점'은 30곳이 넘는다. 농약·비료·농자재 등을 파는 조합 경제사업소와 주유소, 로컬푸드, 종합병원, 대형 농약상, 전자제품 판매점 등이 포함될 것이다. 그러면 해남사랑상품권을 사용할 데가 크게 줄면서 군민에게 피해가 돌아가고 상품권 존속마저 위협받게 된다.

이런 지침을 받은 전국의 지자체가 발끈하고 나섰다. 법적 근거도 없는 지침이며, 연 매출 30억의 제한이 과하고 기준도 애매하다는 것이다. 이런 항의성 건의를 받은 행안부가 어떤 대안을 마련할지 두고 볼 일이다.

태양광 시설 입지 가이드라인은 이격거리를 주거지역은 최대 100m, 도로지역은 아예 설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를 따르는 지자체는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했다. 해남을 포함해 전국의 절반이 넘는 지자체는 현재 주거 100~500m, 도로는 100~1000m 내에 태양광 시설을 하지 못하게 한다.

사실 태양광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는 적극 권장해야 한다. 문제는 무분별하게 들어서면서 경관이나 생태계가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태양광 시설을 두고 이해에 따른 주민 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태양광 시설 천국'이라는 해남군은 난처하게 됐다. 어정쩡한 권고 수준인 가이드라인으로 여기저기 눈치 보기에 내몰린 형국이다. 개발행위 허가를 담당하는 국토부와도 엇박자를 보이고 지자체를 시험에 들게 하는 이런 행태는 중앙부처가 할 짓이 아닌 듯싶다.

2개의 지침이 어떤 방향으로 귀결될지 주목된다. 다만 지방자치의 시대가 저 멀리 가고 있지 않은지 씁쓸하게 다가온다.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중앙집권의 유령이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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