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는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실종된 지 30년 만인 1991년 부활한다. 4년 뒤인 1995년 7월 민선 1기 광역·기초자치단체가 출범하면서 지방자치의 양대 축이 완성된다. 이런 형식을 갖춘 지방자치가 내일이면 29년째에 접어든다.

흔히 민주주의를 얘기할 때 160년 전인 1863년 링컨이 게티스버그에서 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연설이 자주 인용된다. 촌철살인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에 빗대 지방자치는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방자치는 부작용도 낳았으나 주민의 삶과 공직사회에 많은 변화를 이끌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반쪽 자치'에 머물러 있다고 말한다. 예산, 조직의 자치는 상당히 낮은 수준이고, 인사에서도 '관선의 유물'이 남아있다. 그게 부단체장 임명 과정이다. 지방자치법에 기초자치단체의 부단체장 임명권은 기초단체장에 있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여전히 광역단체장이 낙하산으로 내려보내고 있다. 이 때문에 가끔 충돌도 있지만 승자는 언제나 힘센 '광역'에 돌아간다.

해남 마산 출신인 민형배 국회의원이 2018년 광주 광산구청장 시절 부구청장(3급)을 내부 승진해 임명하는 '도발'(?)을 감행했다. 광주와 전남에서는 초유의 사건이었다. 이에 광주시는 인사교류 협약 파기라며 갖은 압박을 가했다. 이런 도전은 전남도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높은 시·군에게는 언감생심이다. 보복의 칼을 빼들면 견딜 재간 있는 시·군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법률에 명백히 규정된 조항이 공직사회에서 힘의 논리에 의해 맥없이 무너지는 현실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기인사를 앞둔 얼마 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남지역본부는 부시장, 부군수의 낙하산 인사 중단을 촉구했다. 지방자치법에 기초단체장이 임명하도록 했음에도 전남도는 한 차례도 이행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임명했다는 것이다. 전남의 22개 시·군에는 5명의 부시장(3급)과 17명의 부군수(4급)가 있다. 부단체장은 경리관, 인사위원장과 대부분 위원회의 위원장을 당연직으로 맡고 있다. 보통 전남도청 3~4년 경력의 과장급이 부군수로 임명되는데 경쟁이 치열하다. 왜 그럴까. 명색이 '준기관장'인 부단체장의 경력을 쌓을 뿐 아니라 쏠쏠한 업무추진비를 잘만 활용하면 월급 한 푼 축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있다. 관용차도 나오고 비서도 딸린다. 나름이긴 하지만 퇴직을 앞둔 공직자에게는 '대충 일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 더없는 보신용 자리이기도 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직업이 부군수'라는 말은 옛이야기가 됐다. 전남도는 서로 나가려고 하니 자체 규정을 만들어 부단체장의 임기를 1년 6개월(기존 2년)로 줄였다. 이런 짧은 기간에 군정을 얼마나 파악할지 불문가지이다. 잠시 들렀다 가기 일쑤이다.

여기에다 반드시 지켜지지는 않지만 고향이나 연고지로 보내지 않는 향피제(鄕避制)라는 것이 있다. 지역 사정에 밝아 업무에 도움이 되긴 하지만 토호세력과 얽혀 일을 제대로 못하거나 비리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자체장이 '새끼 호랑이'를 키우지 않으려는 의도도 담겨있다.

한세대를 달려온 지방자치에 걸맞게 이젠 부단체장 임명도 법대로 가야 한다. 굳이 인사교류를 해야 한다면 기초단체장이 도청 국장급이나 과장급에서 자율적으로 임명하면 된다. 아니면 내부에서 임명해야 한다. 그도 아니면 지방자치에 역행할지언정 차라리 법을 고쳐야 한다. 법치국가에서 공직사회가 앞장서 법을 지키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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