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만물이 생동하는 3월이다. 이번 주를 시작한 6일은 삼라만상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다. 24절기의 세 번째인 경칩(驚蟄)을 직역하면 '땅속에 숨어 있던 벌레(蟄)가 풀린 날씨에 놀란다(驚)'는 의미이다.

경칩이 새봄의 시작을 알리자 생명을 잉태하는 대지가 꿈틀한다. 대지는 곧 땅이자 흙이다. 내일(11일)은 봄의 기운을 받은 흙의 소중함을 되새기자는 '흙의 날'이다. 3월 11일을 '흙의 날'로 제정한 데는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초봄에 농업의 뿌리인 흙의 가치를 알고 보전하자는 취지가 담겨있다. 법정기념일로 지정되고 올해로 8번째를 맞는다. '3'은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달이면서 3원(天地人·하늘+땅+사람)과 3농(농업·농촌·농민)을 뜻한다고 했다. '11'은 십(十)과 일(一)이 합해 흙을 의미하는 토(土)라는 것이다.

춘3월은 모든 생명체의 근간인 대지가 용트림하는 축복의 계절이다. 전국 제1의 농군(農郡)인 해남의 봄은 드넓은 들녘에서 시작된다. 지금은 보리나 밀 등에 웃거름하지만 한 해 농사 준비작업이 본류라고 할 수 있다. 비닐하우스에선 고구마 종서나 봄감자, 고추 모종 심기에 나서고 밭 갈기 작업(로터리)도 이뤄진다.

해남을 두고 중앙무대의 지리적 시각에서 흔히 땅끝이라고 하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농업의 시작점이자 일번지이다. 해남은 땅덩어리가 넓고 농경지는 단연 으뜸이다. 해남의 면적(1043.8㎢)은 서울(605㎢)이나 광주(501㎢)의 두 배에 가깝거나 두 배가 넘는다. 이런 크나큰 땅의 34% 이상이 농경지(356.7㎢·전국의 2.3%)로 채워져 있다. 농경지 가운데 65.6%(234㎢)가 논(畓)이다. 평수로 환산하면 7091만평이다. 서울에서는 면적을 비교할 때 줄곧 여의도(2.9㎢)를 갖다 댄다. 해남의 논 면적은 여의도의 80배가 넘고, 강원도 논의 전체를 합쳐놓은 것의 70%에 이른다. 논이 거의 없는 제주도의 1700배 가까이 된다.

이런데도 해남의 14개 읍면 가운데 산(山)이 들어가는 명칭이 6개(삼산, 화산, 현산, 마산, 황산, 산이면)나 된다. 의아스럽기도 하다. 여기에는 해남을 대표하는 두륜산의 영향이 있다고 하지만 반어(反語)가 숨어 있기도 하다. 조그마한 산이라도 단 두 개뿐이라 해서 산이(山二)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하니 말이다.

제1의 농군인 해남의 들녘이 봄의 출발을 알리고 있다. 그런 농심(農心)의 저 바닥에는 우울함이 똬리를 틀고 있다. 땀방울의 결실인 나락이 푸대접을 받고 배추는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밭에서 썩어가고 있다.

농사를 짓는 심정은 또 어떠한가. 기계화가 걸음마 수준인 비닐하우스나 밭의 작물은 일손이 많이 가야 한다. 고령화의 농촌에는 서로 일을 거들어 주는 품앗이가 사라진 지 오래다. 마을을 지키는 어르신들에게 험한 농사일은 언감생심이다.

농촌의 부족한 일손은 외국인에 의지해야 한다. 시간만 때우고 일당 챙기면 그만이라는 행태에서 노동 생산성은 바닥 수준이다. 일을 잘못했다고 언성이라도 높이면 농기구를 내팽개치고 가버린다. 이를 경험한 한 농가는 '굴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외국인이라도 공급이 부족하니 농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쓸 수밖에 없다. 지금의 농심은 일손이 있으나 없으나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농사를 마쳐도 헐값마저 받지 못해 속이 문드러진다.

이제 또다시 봄이 오고 농사가 시작된다. 그래도 어찌하랴. 올해도 희망의 싹을 틔우고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으로 나아가야 한다. 농촌은 지켜야 하고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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