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시 조성으로 이주 결정돼
순천김씨 집성촌, ‘망미당’ 시제
구석기 시대 유물·청자 가마터도
해남신문은 지난 2024년부터 연중 기획으로 ‘해남 마을 이야기’를 보도했다. 올해도 해남 515개 마을 곳곳의 유래와 역사, 문화유산뿐 아니라 주민들의 삶을 담아내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한다.
지난달 25일 산이면 구성리 마을회관이 모처럼만에 주민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본격적인 영농철을 앞두고 마을 주민의 화합을 유도하고자 마을 잔치를 연 것이다. 돼지고기와 낙지, 오징어무침, 각종 나물, 떡 등 각종 먹거리가 마련됐고 윷놀이판도 벌어졌다.
마을 주민 김점심(76) 씨는 “오랜만에 주민들이 한데 모여 기분이 정말 좋다”며 “이렇게 정이 넘치고 좋은 마을인데 다들 흩어지게 돼 아쉽다”고 말했다.
산이면 구성마을은 지난 2003년부터 추진 중인 서남해안관광레저도시 개발사업인 ‘J프로젝트(현재는 솔라시도 기업도시)’로 인해 이주가 결정된 마을이다. 주민들이 많이 떠나기도 했지만 현재도 76세대 130여 명이 간척지에서 벼농사 등을 하며 거주하고 있다.
‘구성리’라는 이름은 마을 주변에 섬이 9개가 있고 마을 위치가 군소재지 북쪽에 위치해 북두칠성의 성(星)자를 따와 구성(九星)리가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조선중엽에는 ‘곽월리’ 혹은 ‘돈다리’라고도 불렸다. 구성리 일부 밭에서는 구석기시대 유물과 청자 가마터 등도 발견, 과거에도 주민이 거주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병재(57) 이장은 “영산호 개척 전엔 어촌마을이었고 100여 년 전에는 영암과 화원면 등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 장이 주기적으로 섰다고 한다”며 “대목장이 있었던 만큼 돈이 건너다닌다고해 돈다리라고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400년대 김종서의 일가인 순천 김씨 김효손이 이곳에 마을을 이뤄 주민 대부분이 순천 김씨일 정도로 집성촌이었다”며 “학이 앉는 형태의 명당이라는 망미산에 순천 김씨 제각인 망미당을 두고 매해 음력 10월마다 시제를 지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구성리는 매년 추석마다 주민과 향우들이 하나되는 노래자랑대회가 열려 친목을 다지고 주민들이 단체 관광을 나서는 등 화합된 마을이었다.
김병윤(66) 씨는 “주민들 사이에선 콩클대회라고 불렸던 노래대회가 7~8년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져 안타깝다”며 “순천 김씨 집성촌이다보니 마을이 하나의 큰 가족 같았고 제사가 열릴 때면 각 집에서 멥쌀을 조금씩 가져와 잔치처럼 보냈던 추억이 있다”고 말했다.
솔라시도 기업도시 조성으로 주민들은 이주를 해야하지만 농사 지을 농토도 잃고 이주 비용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허정순(82) 씨는 “삼산면 감당리에서 23살 때 이곳으로 시집와 농사일과 갯벌에서 게, 낙지, 고동, 바지락 등을 잡으며 생계를 유지했다”며 “이주가 결정된 이후 마을이 텅텅 비어 도깨비촌이 된 것 같은 느낌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해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고 말했다.
김쌍봉(66) 씨도 “지난 2010년을 기준으로 감정 평가가 실시되고 그것을 기준으로 2018년도에 보상이 이뤄져 물가 기준으로 봤을 때 큰 차이가 있었다”며 “평생을 농업에 종사하며 배운 기술이 그것뿐인데 농사 지을 땅을 잃어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주할 택지는 결정됐지만 기반 공사도 안 이뤄졌고 부지 구매며 주택 건설 비용이며 과거 보상금으론 현재 이주가 불가능한 실정이다”며 “강제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만큼 기업도시 관련해 주민들의 생활 대책을 군에서 신경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덧붙였다.
현재 산이면 구성지구에는 솔라시도태양광발전소와 솔라시도컨트리클럽, 산이정원 등이 조성돼 있고 AI 클러스터 허브 구축과 RE100 기업 유치, 국제학교 건립 등 대규모 사업이 추진 중이다. 지난해에는 정부의 기회발전특구로도 지정, 이전·투자 기업에 대한 세제와 재정지원, 규제특례 등 혜택이 주어져 해남군 미래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엔 평생을 지내온 고향을 떠나야하는 사람들이 있다. 구성마을의 600년 역사는 사라지더라도 주민들의 정신이 이어지고 다시 하나로 뭉쳐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