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여객기 추락사고에 구조 나서
십시일반 쌀 모아 구조대에 식사제공
제주항공 사고에 더욱 안타까움 전해
화원면 마천마을은 한때 200가구가 넘을 정도로 굉장히 부흥했던 마을로 쌀과 배추, 고추, 양파 등 농작물을 비롯해 바지락, 석화, 꼬막 등을 양식하며 수익을 올렸다. 삼호 방조제가 생기기 전에는 배로 목포를 다녔다.
산에서 마을을 내려다봤을 때 그 형태가 말처럼 생기고 마을 앞으로 하천이 흐른다고 해 ‘마천’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현재는 27가구 45명이 거주하며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32년 전 해남 화원면 마산리 마천마을 인근 산에서 발생한 아시아나항공 추락 사고와 당시 주민들의 봉사 정신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무안국제공항이 목포공항을 대체해 건설됐고 마천마을 주민들의 희생과 봉사가 제주항공 사고 현장을 찾은 봉사자들의 모습과 겹쳤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 추락 사고는 지난 1993년 7월 26일 김포국제공항에서 출발해 목포공항에 도착 예정이었던 아시아나항공 소속 보잉 737기가 기상 악화와 열악한 공항 환경, 조종사의 무리한 착륙 시도 등으로 인해 마천마을 앞 운거산에 충돌해 발생한 사고다. 이 사고로 당시 여객기에 탑승해있던 승객과 승무원 110명 중 66명이 사망하고 44명이 다쳤다.
93년도 당시 마을에서 슈퍼를 운영했던 김수임(71) 씨는 “목포공항으로 착륙하는 비행기가 매일 오후 2시반께 마을 위를 지나가는 터라 비행기 소리로 시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는데 그날은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후 4시께 여객기 사고가 마을 앞 산에서 발생했다는 마을방송을 듣고 주민들이 다함께 구조작업에 나섰다”며 “현장에 도착하니 여객기가 3동강이 나있고 아수라장이었는데 현장에서 부상을 입은 한 아이를 업고 내려와 구조 헬기에 인계했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들이 임시로 만든 들것으로 부상자를 나르고 마을을 찾은 구조대와 취재진 등에 라면을 끓여 먹였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이번 제주항공 사고를 뉴스로 접했을 때 비슷한 사고를 겪었던 당사자로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덧붙였다.
당시 부녀회장을 맡고 있던 고영자(85) 씨는 “그때는 쌀이 넉넉지 않던 시기라 동네 주민들과 십시일반 쌀을 모아 밥을 지어 마을을 찾은 사람들에게 끼니를 제공했었다”며 “잘했다고 정부에서 청와대로 만찬도 초청해주고 김영삼 전 대통령도 만났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항공 사고뉴스를 TV로 접하며 나이가 들어 행동으로 도움을 주기 힘든 상황이라 더 안타까웠고 제발 생존자가 더 있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고 덧붙였다.
마천마을회관은 지난 1993년 여객기 사고 이후 건립됐다. 주민들의 희생정신과 인간애를 방송매체로 접한 에이스침대(주)의 창업자 고 안유수 회장이 5000만원을 쾌척해 ‘마천숭의관’이라는 마을회관을 짓도록 도왔다. 이후로도 마을 운영비를 10여 년 이상 후원하며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을 실천으로 옮겼다.
또 KBS에서는 ‘마천마을 사람들’이라는 드라마를 제작해 주민들의 봉사 정신을 영상에 담기도 했다. 실제 구조에 참여했던 마을 주민들이 단역으로 출연해 의미를 더했다. 현재는 위령비가 숭의관 옆에 세워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문성수(72) 이장은 “원래 목포에 거주하다 1999년 아버지의 고향이었던 이곳 마천마을로 이주해왔는데 더 빨리 올 것을 후회할 정도로 인심 좋은 마을이다. 예전엔 사람이 정말 많아서 거리를 다니면 서로 어깨가 치었다고 한다”며 “현재는 주민들이 고령화돼 당제를 못 지낸지 5년 이상이 됐지만 5000평이 넘는 당산에서 매해 당제를 지냈던 것이 마을의 특징이다”고 말했다.
마천마을은 ‘풀잎’으로 잘 알려진 남우 박성룡(1930~2002) 시인이 태어난 곳으로도 알려져있다. 시인은 광주로 이주해 미당 서정주 시인과 다형 김현승 시인의 지도를 받았으며 1955년 ‘교외’, ‘화병정경’ 작품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1969년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 1970년 춘하추동, 1977년 동백꽃, 1982년 휘파람새, 1987년 꽃상여, 1991년 고향은 땅끝, 1998년 풀잎 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마을에는 시인의 생애를 소개하는 안내판도 설치돼 있다.
문 이장은 “현재 50대인 주민이 3명뿐이고 평균 연령이 70대가 넘을 정도로 마을이 고령화돼 마을 사업 추진이나 활동적인 것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그래도 주민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며 주민들과 힘을 모아 계속해 마을을 잘 가꿔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