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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제언] 우슬재는 왜 웃마루재인가김길남(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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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1.09  15: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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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면 건촌 출신으로 전남대 지리교육학과를 졸업하고 32년 6개월간 지리교사로 근무하다 퇴직했다. 지난 1996년 8월 해남신문 지면을 빌려 우슬재가 웃마루재에서 유래됐으며, 고개 이름을 순우리말인 웃마루재로 고쳐야 한다는 내용의 특별기고를 실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웃마루재라는 고유 이름에 대해 해남문화원, 해남군지의 마을유래지 등에서 어떠한 변화의 시도가 이뤄지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에서 글을 쓰게 됐다. 해남신문의 애독자이자 고향을 잊지 못하는 출향인으로서 우슬재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공유되고 회자되기를 바라면서 글을 다시 보내게 됐다.

 

'웃마루재→웃모래재→웃무릎재→우슬재'로 변천
'위쪽 산마루에 위치한 고개'를 뜻하는 순우리말
'소의 무릎을 닮은 고개'라는 견해는 잘못된 것

   
▲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우사현 한자.

조선 초기에 편찬된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해남읍 동쪽 10리에 우사현(우沙峴)이라는 고개가 나온다. 1929년 간행된 '전선명승고적(全鮮名勝古跡)'에서는 고개 이름이 궁사현(弓沙峴)으로 바뀐다. 그런데 지금 해남 사람들은 이 고개를 우슬치(牛膝峙)라고 부른다. 이 고개를 소(牛)의 무릎(膝)을 닮은 고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그런 것일까?

우사현, 궁사현, 우슬치는 하나의 고개인데, 왜 이름이 셋이나 될까? 이름 속에 숨어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하나하나 퍼즐을 풀어보자.

   
▲ '전선명승고적'의 궁사현 한자.

먼저 우사현과 우슬치를 살펴본다. 현(峴)과 치(峙)는 우리말로 고개(재)이다. 앞 글자를 보니 한자는 다른데, 발음은 둘 다 '우'이다. 우리 말로 높은 곳, 즉 '우(위)'를 나타내기 위해서 발음이 같은 우(우, 牛)자를 가져다 쓴 것일 수 있다. 실제로 이 고개는 해남읍에서 보든, 옥천쪽에서 보든 위쪽에 있다.

우(우, 牛) 뒤에 이어지는 한자는 사(沙)와 슬(膝)이다. 모래(沙)와 무릎(膝)은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두 한자가 우리말 '마루'를 나타낸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우리는 높은 곳을 마루라고 일컫는다. 산에서는 높은 곳을 마루, 산마루라고 한다.

'마루'가 나중에 '모래'와 '무릎'으로 변해 간 것은 아닐까? 마루→마래→모래(沙), 마루→무루→무릎(膝)으로 변천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우사현과 우슬치라는 한자 이름 속에는 우리말 '웃(윗)마루재'가 숨어있다. 위(우)쪽, 높은 산(마루)에 있는 고개인 것이다.

이 해석이 맞다면 궁사현도 웃마루재로 풀려야 한다. 그런데, 활(弓) 속에 숨어있는 우리 말은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우사현에서 우(우)자의 모양에 주목하게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우(우)자와 '전선명승고적'의 궁(弓)자이다.

어조사 우(우)가 궁(弓)자와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뜻이 전혀 다른데도 글자의 모양이 많이 닮았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여기서 한 가지 합리적인 의심이 떠오른다. 우(우)자를 궁(弓)으로 잘못 옮겼을 가능성이 그것이다. 

실제로 이런 사례가 있다. 김정호 자신이 남긴 지도에서조차 한자를 틀리게 베낀 것이 확인된다. '청구도'에서 우슬치(牛瑟峙)로 썼다가 '대동여지도'에서는 우슬치(牛膝峙)로 정정한 것이다. 슬(瑟)자와 슬(膝)자는 글자의 모양만 비슷할 뿐 뜻은 전혀 다르다. 조선시대에는 복사기가 없었고, 일일이 붓으로 옮겨 썼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비슷한 한자로 베끼는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지금의 우슬재 이름은 '웃마루재→웃(우)모래(沙)재(峴)→웃(牛)무릎(膝)재(峙)→우슬재'의 과정을 거쳤다. 중간에 등장하는 궁사현은 우사현의 오기이므로 큰 의미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우슬재의 뿌리는 우리 말이다. 위쪽 산마루에 있는 고개 '웃마루재'가 어원인 것이다.

해남에 가시거든 한번쯤 우슬치 옛길을 걸어보기를 권한다. 웃마루재는 흰 구름보다도 그리움이 먼저 넘는 고개, 봄이 아직 멀리 있을 때도 진달래가 마중을 나오는 고개이다.

   
▲ '청구도'의 우슬치 한자.
   
▲ '대동여지도'의 우슬치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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