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서양화가)

 
 

얼마 전 해남문화예술회관에 이상한(?) 전시장이 생겼다. 예술회관 1층로비 여자화장실과 다목적실 사이 빈 공간에 '기획전시장'이라는 이름의 전시장이다.

기획전시장을 보면 참으로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장에는 지붕이 없어 하늘이 훤히 보인다. 그것도 삼각 철골구조물이 잔뜩 만들어져 지붕 골조를 이루고 있다. 철골 구조물들은 삼각 구조의 강인한 인상으로 하늘로 치솟고 있다. 마치 웅장한 철골구조물 전시장 같은 느낌이다. 전시장의 주체는 작품이지 주변 구조물이 아니다. 이것은 주객이 전도된 어이없는 모습이다.

문제는 철골구조물 뿐만 아니다. 자연채광을 차단해주는 전시장 지붕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자연채광은 작품 본연의 색상을 저해하는 요소라 전시장에서는 자연채광을 가리고 조명으로 작품을 비춘다. 작품 본연의 색감을 돋보이게 하고 감상자로 하여금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주변 조명도 감도를 낮추어 작품에만 조명을 비춘다. 이것이 전시장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기본 상식인 것이다.

이러한 상식이 무시된, 듣도 보지도 못한 전시장이 예향 해남에 생긴 것이다. 작품전은 해야 하고 제대로 된 전시장이 없기에 울며 겨자 먹기식의 심정으로 이곳에 작품들을 디스플레이하고 오픈했다.

작품들을 걸었는데 하늘이 휑하니 보이고 철골구조물이 어지럽게 보여 시선이 분산되고 산만해 작품감상에 방해가 됨이 현실로 나타났다. 또 앞쪽에는 여자화장실이 있어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사람들과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겹쳐 어수선하고 전시장 뒤쪽에는 대공연장으로 통하는 문이 위치한다.

우리가 작품전을 하는 그날 마치 대공연장에서 국악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공연하는 분들이 전시장 뒷문으로 들락거리면서 작품 관람하는 관람자들과 좁은 공간에서 서로 뒤엉키는 모습은 마치 도떼기시장을 연출했다. 작가들이 혼신을 다한 작품들이 관람객으로 하여금 좋은 환경에서 작품에 몰두하고 차분하게 감상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하는데 작품감상에 방해되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았다.

해남은 예로부터 예향(藝鄕)이라 불린다. 해남에는 국보 제240호로 지정된 공재(恭齋) 선생의 자화상 진본이 있는 곳이다. 공재공의 자화상은 국보를 뛰어넘어 미술사에서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명작이다. 이러한 훌륭한 선조의 작품이 있는 해남에 제대로 된 미술관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개탄스럽다. 이웃 강진에는 강진아트홀이 있고 진도에는 5개나되는 미술관이 있어 작가들이 작품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 있다.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이웃 동네가 참으로 부럽다.

해남군의 행정을 책임지는 분들께 부탁드린다. 문화는 그 사회의 지적 수준의 척도요, 지속적으로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우리의 유산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하루 빨리 제대로 된 '해남군립미술관'이 만들어져 예향 해남의 이름이 다시금 굳게 서고 해남인으로 해남문화예술인으로 자긍심를 가질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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