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아 (환경교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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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환경 문제는 더 이상 미래의 과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높은 파도로 밀려오는 변화 속에서 ‘탄소중립’, ‘순환경제’, ‘ESG’ 등의 개념을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다. 이상기후는 더 이상 뉴스 속 이야기가 아니며 우리의 일상과 지역 사회 전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환경을 ‘선택 가능한 관심사’가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 ‘생활의 문제’로 끌어올리고 있다.

마을을 비롯한 다양한 단체와 모임에서도 흐름에 발맞춰 환경 활동과 교육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작은 공동체가 스스로 환경 의제를 다루고 주민과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생태 감수성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 있다. 공동체 기반의 환경 활동은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삶 속에서 환경을 이해하는 중요한 시작점이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환경이라는 이름이 단순한 홍보 도구로 소비되거나 체험 중심으로만 흐르며 본질적 성찰과 실천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표면적 참여를 높이기 위한 활동이 오히려 쓰레기를 만들기도 하고 ‘환경 체험’이라 이름 붙였지만 플라스틱 재료를 대량으로 사용하거나 일회성 만들기 활동에 그치는 사례도 있다. 탄소중립과 아무 관련 없이 활동 자체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환경이라는 단어가 가진 책임과 무게를 다시 되돌아볼 때다.

그러나 조용한 곳에서 묵묵히 진짜 환경을 실천해온 이들 역시 존재한다. 화려한 홍보나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닌 삶 속의 실천과 책임을 중심에 두고 활동을 이어왔다. 말보다 행동으로, 형식보다 실천으로 환경을 지켜온 단체와 공동체들이다.

예컨대 하늘과 숲이 비친 투명한 방음벽을 실제 자연으로 착각해 날아든 새들은 보이지 않는 벽에 그대로 부딪히는 사고를 겪는다. 이러한 조류 충돌을 줄이기 위해 사비를 들여 방지 스티커를 구입하고 도로 방음벽과 유리창에 직접 붙이며 작은 생명을 살리는 데 앞장서는 단체가 있다. 또 수년 동안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천과 해변을 돌며 쓰레기 줍기를 실천해온 모임도 있다. 별다른 홍보 없이 ‘지금 이곳을 조금 더 깨끗하게 만들겠다’는 마음 하나로 이어온 꾸준함은 그 자체로 환경 실천의 가치와 깊이를 보여준다. 자연 속에서 제로웨이스트 생활 문화를 체화하고 마을에서 자원순환을 몸소 실천하는 공동체도 있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버리기보다 다시 쓰는 방식을 선택하고 물건의 수명을 길게 가져가는 삶의 태도를 나누며 지역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또 아이들과 함께 숲과 갯벌을 찾아 생태계를 관찰하고 계절의 변화를 기록하며 생활 속 환경 감수성을 되살리는 돌봄 중심의 환경교육 공동체도 있다. 이들은 환경을 ‘배우는 과목’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는 과정’으로 이해시키며 미래 세대와 자연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삶 속에서 환경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생명과 조화를 이루며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하는 선택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화려한 보도자료도, 보여주기식 인증샷도 없지만 지역사회의 생태 감수성을 키우며 조용히 변화를 이끌어왔다. 바로 이러한 꾸준하고도 성실한 실천이 기후위기 시대의 진정한 희망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진정성 있는 활동이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이다. 이들의 노력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지지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환경 활동은 개인의 열정만으로는 유지되기 어렵다. 지역사회가 함께 응원하고 행정과 공동체가 파트너가 돼야 한다. 환경은 우리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할 ‘삶의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고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우리의 선택 하나가 지구의 온도를 바꾸고 작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함께 걸어갈 때 환경은 비로소 과제가 아닌 삶이 된다. 조용히 실천해온 손길들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연대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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