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상 (광주생명의숲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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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어느 날. 초가집 토방에 앉은 옆집 아짐은 이장이 읽어주는 군대 간 아들의 편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연신 눈물을 훔친다. 군대 가면 맞아 죽어 온다며 도시로 가 공단을 전전하며 도망 다니다 서른살이 다 돼 잡혀간 아들이다. 주변에 글을 읽는 사람이 없어 편지를 받아 본지 한나절 만에 자전거로 면사무소에 간 이장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려온 터다. 다행히 큰 가죽가방을 걸친 우체부가 전보라고 외치지 않았으니 전사통지는 아니라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불안한 마음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아침 식전부터 어젯밤 꿈 얘기를 했다가 아재한테 핀잔당했던 터라 더욱 그렇다. 그 아짐은 손주들에게는 ‘문맹’을 숨기기 위해 숫자만이라도 깨우치고 살다가 먼 여행을 떠났다.

#2025년 어느 날. 광주의 아들집을 다녀오다가 나주의 한 농협하나로마트 앞에 새로 생긴 커피전문점에서 70대 후반의 옆집 형님은 커피를 주문하려다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라는 안내문을 보고 안절부절하다 결국 매장에서 시원한 캔커피 하나 들고 나왔다. 지금은 폐교된 앞마을에 있는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어렵게 군대를 마치고 도시의 공단에서 찌든 삶을 이어가던 옆집 형님은 귀농을 선택했다. 몇 해 전 앞집 아짐이 세상을 떠나 폐가가 된 앞집을 인수해서 넓은 땅에 집과 창고를 지어 2억짜리 트랙터와 이앙기, 콤바인 등 100가지가 넘는 농기구를 정리해 두고 있다. 옆집 아재는 30마지기 논농사 지으면서 머슴을 부렸지만 간척지 땅 300마지기를 부부가 거뜬히 짓고 있다.  

단순한 농삿일에 비해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키오스크라는 괴물은 각종 민원서류를 단숨에 해치운다. 농업기술센터에서 무료로 수령하는 미생물도 키오스크가 해결한다. 로컬푸드직매장에 납품하기 위해서 발행하는 가격표 인쇄도 또 이 녀석이 길을 막는다. 음식점 테이블에서 화면을 보고 주문하고 카드로 결제하는 세상이다. 이 모든 것을 잘해낸다고 디지털문해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문해력은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를 올바르게 찾고 평가하며 안전하게 활용하는 능력까지를 요구한다. 단순히 정보를 읽고 쓰는 수준뿐만 아니라 비판적 사고와 윤리적 활용, 소통과 협업까지 포함한다는 것이다. 일부 국회의원들 마저도 AI로 조작된 사진과 가짜뉴스로 개망신을 당하는 세상이다. 컴퓨터, 스마트폰, 인터넷 등 다양한 디지털 도구와 플랫폼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능력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자체 교육관련 기관들도 ‘문맹퇴치’라는 단어를 버린 지 오래다. 지역민의 디지털문해력 향상을 위한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해남군교육재단도 공모사업에 선정돼 찾아가는 문해력교육도 진행했다한다. ‘꿈을 보며 배우는 학교’라는 뜻의 꿈보배학교가 바로 그것이다. 대상자들이 주로 어르신들이라 찾아가는 프로그램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섬지역인 완도군의 경우 찾아가는 프로그램의 비중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문해교육을 실시한지는 오래됐다. 몇해전부터 문해교육사가 SNS에 올린 아짐들의 소리나는 글을 봐 왔다. 교육재단까지 출범한 해남군이 문해교육 뿐만 아니라 디지털문해교육을 위한 획기적인 방향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이 시점에서 일부 강사들이 프로그램과정에서 말썽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뉴스도 있어 안타깝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어르신들의 디지털문해력 향상을 위해 매진하기를 바란다. 

문맹을 숨기고 싶었던 옆집 아짐이나 더 이상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을 주문도 못하고 키오스크를 배회하는 지역민들이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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