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률 (해남고 교사)
최근 대통령의 사면권을 두고 말이 많다. 폐지해야 한다는 측, 유지하되 수정 보완이 필요하다는 측, 말은 못 하지만 그대로 두자는 측이 대놓고 또는 끙끙 앓아가며 속내를 드러낸다.
옳고 그름의 차원에서는 유지하자는 측이 일단 판정패인데, 패배에도 수긍하려 들지는 않는 모습이다. 어쩌랴. 늘 그런 식의 유전자가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형국인 것을. 그런가 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나가면 한쪽에선 한숨을 내쉴 테고, 다른 쪽에선 쾌재를 부를 것이다. 늘 그런 식이다.
이 사회의 기득권은 시간을 기다릴 줄 안다. 좋은 태도다. 그들에겐 돈과 권력이 있어서 ‘기다리면 또 온다’는 것을 안다. 어쩌랴, ‘그들만의 룰’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우리를.
룰은 합의됐을 때 정당성이 인정된다. 합의되지 않은 룰은 편파이고 차별이고 갈등의 원인이 된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합의된 룰일까?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국회를 통과한 법령이라는 데야 누가 뭐랄 것인가? 그 국회가 문제라면 문제지. 그들 기득권은 은근슬쩍 단맛이 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그 법안에 빨대를 꽂는다. 야비하게도.
다시 사면권으로 돌아가자. 이재명 대통령은 당당하게 국민을 전면에 세우고 광복절 행사장에서 국민에게 임명받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국민에게 선출됐으나 지속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역대 정권을 보며 국민의 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은 고육지책이었음을 이해한다. 우리 중 누군가가 그 기획을 맡았더라도 그런 마음이었을 테니….
그런 마음을 가진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어설펐다. 아니 모자랐다. 억울한 측면이 있을 수 있지만 사면된 자들의 면면을 보면 파렴치함을 벗어날 수 없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더구나 늘 해오는 주옥같은 말씀을 따랐다. 국민 통합을 위한 노력이었다고. 그래서 통합이 됐는가? 슬픔과 분노를 자아내진 않았는가? 이 분노가 돌아갈 곳은 어디일까?
억울한 자가 없진 않겠다. 그 억울한 자로 거명되는 대표적인 사람이 조국이라고 한다. 부도덕한 검찰이 일가족을 도륙했다는 표현까지 나돌 정도니 억울하다는 그들의 주장에 일견 동의할 측면도 있다. 검찰의 부도덕함과 정치 앞잡이 노릇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고결하신 검사님들은 스스로 권력이 되거나 그 충견이 돼 날뛰는 모습을 너무도 많이 보여주셨다. 욕을 처먹는다고 억울할 것도 없다. 자신이 받드는 권력을 위해 적대시되는 상대를 도륙하는 일까지 저질러대는 검찰의 부도덕함이야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그 ‘억울한 조국’은 죄가 없는가? 부도덕한 검찰이 조국 수사에서만큼은 정의롭지 않았는가? 정의로움까지는 아니더라도 할 일을 하지 않았는가? 필자는 그 수사가 매우 당연했다고 본다. 대신 검찰이 왜, 다른(그들의 추종자이거나 그들을 키워 줄 만한 자들)이에게는 그처럼 수사하지 않는가를 따져야 한다. 조국을 편드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 ‘윤석열 정권에 빌붙은 자들에게는 왜 조국처럼 수사하지 않는가’라는 주장은 매우 타당하다. 검찰이 국가기관으로 파렴치하지 않으려면 그들 자신이나 그들이 떠받드는 자들에게 같은 잣대를 대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검찰이 더는 공정함이나 진실의 편에 서지 못하는 것이다.
검찰은 참 나쁘다. 그렇다고 조국의 죄가 없어지는가? 공문서 위조와 감찰 방해 직권남용, 나쁜 입시제도를 이용한 부정한 이익 취득, 유전합격 무전탈락의 정당화 등 입시비리 하나만으로도 ‘네 죄를 네가 알렷다?’.
당분간 대통령을 향한 긍정 평가는 줄어들 것이다. 대통령의 오만이 불러올 필연이다. 윤석열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오만과 최측근의 주술에 휩싸인 나머지 나락으로 떨어졌다.
적은 네 안에 있다. 네 안 이기성과 편파성이 너의 심장을 공격할 것이다. 심장의 어둠을 살필 눈을 뜨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