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현역병, 본보 기자에 '단독 증언']
읍 백야리 군부대 예비군훈련장 인근 야산
가매장 상태 봉분 파보니 부패해 다시 덮어
지문 채취 통해 신원조회 시도하려다 못해
휴가 중 귀대 못하고 해남대대서 이틀 작업

▲지난 17일 해남을 찾은 A 씨가 80년 5·18 당시 암매장 추정지를 찾아 본보 기자에게 증언하고 있다.
▲지난 17일 해남을 찾은 A 씨가 80년 5·18 당시 암매장 추정지를 찾아 본보 기자에게 증언하고 있다.

"43년이 지난 일이고 너무도 슬픈 일이지만 어디 가서 얘기도 하지 못하고 이제야 털어놓게 됐습니다." [영상뉴스 보기]

지난 17일 해남 5·18 암매장 추정지 발굴 현장인 백야리 군부대 예비군훈련장 부근을 찾은 A 씨는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그는 이번 해남 암매장 발굴과 관련해 암매장 추정지 위치와 매장 방식, 매장 기수 등을 제보한 인물이다.

80년 5월 다른 지역 부대에서 현역병으로 근무하고 있던 A 씨(당시 20세)는 휴가차 고향인 해남을 찾았다. 그러나 5·18 민중항쟁이 발발하고 해남에서도 외부와 교통이 두절되자 귀대를 하지 못하고 소속 부대 지시에 따라 당시 육군 31사단 산하 해남대대에 이틀동안 머물게 됐다.

5월 27일께 군의관과 하사관으로 보이는 군인들이 신원조회를 할 게 있으니 도와달라고 해 삽과 방독면을 지급받아 군부대 뒤쪽으로 올라갔고 가매장 상태로 밋밋한 형태의 봉분들을 파들어갔다.

A 씨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데 시신 3구가 나왔고 펼치라고 해서 펼쳤더니 구더기가 보였다"며 "지문 채취 등을 시도하려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미 부패해 신원조회가 안될 것 같다며 다시 덮으라고 해 그대로 묻게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당시 해남대대 소속이 아니어서 이런 지시를 한 군인이 정확히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군부대 뒤쪽에 매장된 시신이 있었고 3구였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A 씨는 "5·18과 관련해 어떠한 얘기도 할 수 없는 어두운 시절이 있었고 이후에도 말했다가는 거짓말쟁이로 몰리고 싸우게 돼 쉽게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다"며 "지금이라도 내가 봤던 상황을 그대로 전해 진상규명에 도움이 되고 희생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에 증언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한 방송을 통해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암매장과 관련해 제보를 받는다는 자막을 보고 제보를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A 씨 증언은 그동안 베일에 싸인 해남 5·18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5·18 조사위는 A 씨 등 당시 장병들의 증언을 토대로 백야리 군부대 예비군훈련장 부근에서 지난 15일 5·18 당시 암매장으로 추정되는 유골 3기를 발굴했다.

그동안 정부와 군은 해남에서 5·18과 관련해 2명이 사망했고 암매장은 없었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당시 현장에 있었던 피해자와 목격자, 방위병 등은 7명 정도가 숨졌고 암매장을 목격했거나 직접 가담했으며 다른 지역에서 숨진 시신이 헬기로 이송돼 군부대 인근에 묻혔다는 증언도 있었다.

A 씨 증언은 이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언이 되고 있으며 이번에 발굴된 유해가 5·18 행방불명자 가족의 DNA와 일치할 경우 실제 민간인을 암매장한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되는 것이어서 앞으로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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