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변화에 맞는 이장 위상 재정립돼야

동네로 들어오는 버스마저 없었던 시절에는 마을과 세상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통로가 마을이장의 자전거였다.이장은 자전거를 타고 면소재지에 나가 호적등본을 떼다주고, 아픈 이들의 약을 지어오기도 했다.TV, 라디오, 전화기 등 통신시설이 상용화되지 않았던 그 시절, 이장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입``이 되기도 했다.하지만 교통과 정보통신의 급격한 발달은 이제 더이상 ¨리민여러분들께 알립니다¨로 시작하는 동네공동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이장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됐다.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장의 위상도 크게 변해1997년 8월에 개정된 군조례에는 이장은 리 구역안에서의 읍면장의 업무중 그 일부를 도와주는 기능을 하며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행정기관에 전달 반영하는 행정의 최말단 업무를 수행한다고 명시했다.또한 이장은 리의 발전을 위한 자주적, 자율적 업무처리, 지역 주민간 화합단결과 이해의 조정, 기타 지역 주민의 편익 증진과 봉사를 그 임무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이 규정에는 이장이 공무원으로 행정기관에 소속된 것도 아니고 주민자치기관의 대표로써 주민의 대표자로서 위상을 부여한 것도 아니어서 행정과 주민자치의 중간적인 위치라고 위상을 규정하고 있는 듯하다.역사에 의하면 이장이 처음 등장한 것은 일제시대인 1935년경이었으며 산업화가 덜 진행돼 농경사회였던 70년대까지만 해도 이장은 한마을의 대표자로 수하에 서기까지 두면서 권력을 행사하기도 하였으나 농촌의 몰락과 농촌인구가 급속히 감소되면서 그 위상과 역할이 급속히 변화됐다.이장 의존도 갈수록 떨어져행정이 전산화되고 교통이 편리해짐에 따라 이장들의 업무도 예전에 비해서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22년째 동네 이장을 맡아보고 있는 주재규이장(56,화원면 학상리)은 ¨처음 마을일을 맡아보던 70년대에는 행정에서 요구하는 일도 많고 마을인구도 많아 내 농사 돌보기도 힘들었다¨면서 ¨주민들의 자잘한 심부름무터 민방위 업무를 물론 인구조사, 마을 동향보고, 공공기금의 거출, 마을 공동자재구입, 비료살포, 심지어 주민들이 농협에 진 빚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고 말했다.하지만 최근에는 농촌인구가 크게 줄어들고 행정 전산화, 편리한 교통 등으로 주민들이 이장을 통해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어 이장의 일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이재영이장951,화원면 산촌리)은 ¨면소재지까지 교통이 편리해져 주민들이 이장을 통하지 않고 행정업무와 민원을 직접 처리하는 비중이 훨씬 많아 주민들의 잔심부름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설명했다.돈보다 명예가 우선이장들의 보수는 동네의 규모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는 것이 사실이다.군조례에는 이장이 임무수행에 소요되는 실비로 예산의 범위안에서 월정수당을 지급하고, 예산의 범위안에서 상여금을 지급하도록 했다.현재 이장들이 실비명목으로 군으로부터 받는 급여는 월 12만원 정도로 알려지고 있으며 월 2회 개최되는 회의 참석수당이 주어진다.또한 농협에서는 영농자재의 공동구매와 분배 등의 농협잔무를 처리하는 마을영농회장 명목으로 이장에게 1년에 60여만원 정도 보수가 지급된다.이밖에도 자치단체의 실비변상과 농협수당과 별도로 각마을에서는 마을대동제와 총회를 개최하면서 가구당 일정액을 각출해 리정세를 주고 있다. 리정세는 마을마다 다소의 차이도 있고 현금으로 거출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쌀 5백50kg, 보리 6백kg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하지만 많은 이장들은 이런 금액이 보수라기 보다는 이장을 수행하는 업무추진비 정도로 생각한다. 산이면의 모마을 이장은 ¨예전에는 일이 많아 마을 일을 보다보면 사비도 많이 깨지곤 했다¨면서 ¨많은 이장들이 돈보다는 마을을 대표한다는 명예를 더 중요시한다¨고 말했다.젊은 이장들 리더쉽 아쉬워최근에 농촌인구가 점차 노령화되면서 젊은 이장들도 많이 출현하고 있다. 30~40대의 젊은 층과 심지어 20대 이장도 등장하고 있다.이런 젊은 이장들은 기동성이 좋고 관청업무에도 뛰어난 면을 보이지만 경험이 없고 연배가 높은 어른들을 장악하는 리더쉽이 부족해 이런저런 사람들의 입김에 휩쓸려 끌려 다니다보면 마을일을 처리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고 한다.이런 상황에 대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장을 맡고 있는 박동민씨(37,화산면 월호리장)는 ¨마을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또 변화를 주고 싶어도 주민들이 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이라 보수적인 면이 많아 여러 의견을 조율하고 사업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설명했다.사람동원, 사업유치 가장 힘들어이장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면이나 군 행사에 주민들을 동원하는 일과 울력과 같은 마을공동사업에 주민들을 모으는 일이다.행정기관 행사에 사람 동원하는 것은 시대가 변화면서 점차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일부 행사에 주민들을 동원해야 하는 부담이 이장들에게 남아있다고 한다.또 주민들의 인구구성이 노령화되고 부녀화되면서 마을울력에 주민들을 동원하기 힘들어 마을기금으로 인부를 사서하고 울력도 점점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고 한다.사업이 이장의 능력을 반영하는 척도라는 바뀌지 않는 주민들의 고정관념도 이장업무를 힘들게 하는 것 중에 하나다.여전히 많은 주민들은 ``마을안갈포장, 마을회관 신축과 같은 주민들의 숙원사업을 얼마나 자기 마을로 유치할 수 있는가``를 이장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자기 마을에 좀더 많은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이장이 똑똑해야 하고 면사무소 등 행정기관을 찾아다니면서 정보를 획득하고 인간관계를 돈독히 해야한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이장들과 많이 접촉하는 공무원들은 지금은 사업의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어 예전같은 이장들의 로비는 통하지 않는다고 본다.한 이장은 ¨마을 주민들이 이기적이라고 느낄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면서 ¨마을 안길 포장을 하기위해 이곳저곳을 분주하게 돌아다녀도 우선순위에 밀려 다른 마을에 사업이 돌아가면 ``우리마을 이장 능력없다``는 소문이 돈다¨고 말했다.더욱이 일부 선진적인 이장들은 주민들의 이러한 의식이 ¨자치기구인 한마을의 대표호서 이장의 권한을 약화시킨다¨면서 ¨이장을 행정기관으로부터 동네사업을 따 오는 중간 매개로 생각하는 사고는 이장이 행정기관의 눈치를 보면서 종속적일 수 밖에 없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10년째 이장을 맡아보고 있다는 한 이장은 ¨농촌이 점점 해체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예전처럼 정이 넘치는 마을 공동체를 지켜나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사람이 마을이장 아니겠느냐¨며 ¨새로운 시대에 맞게 이장들도 행정의 하수인이 아니라 자치기구인 마을공동체의 대표의 역할에 충실하고 주민들도 이장에 대한 왜곡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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