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변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과 궤를 같이한다. 이런 말은 꽤 불편하게 다가온다. 사람을 무슨 물건에 비유해 비꼬듯이 던진 말이기 때문이다.

속을 뒤집어 놓는 또 다른 얘기를 하나 소환해본다. 80년대까지 군 생활을 한 50대 이상 남자는 한 번쯤 겪어봤을 내용이다. 당시 구타가 일상으로 이뤄지는 '무식한' 군대문화가 사라지지 않았다. 선임병이 군기를 잡는다며 후임병들을 줄 세워 놓고 각목이나 야전삽 등의 흉기로 폭력을 행사했다. 선임병은 린치를 가하면서 "조선인과 명태는 때려야 제맛"이라는 소름 돋는 말을 지껄였다. '일제'가 물러간 지 반세기 가까이 흘렀는데도 그들이 한민족을 비하하던 말까지 이어받아 활개를 치던 시절이었다. 군대에서 일제 잔재가 어디 이뿐인가. 고참(선임), 구보(달리기), 모포(담요), 요대(허리띠), 바리깡(이발기) 등 용어에서도 셀 수 없이 많다. 일본군에 부역했던 '조선인'이 그대로 국군에 몸담으면서 잔재 청산은 뒷전으로 밀린 탓이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굳이 고치려고 하지 않은 '잘못'이 진짜 주범으로 꼽힌다.

대부분 사람은 삶의 과정에서 숱한 잘못을 저지른다. 여기서 잘못을 고치거나 고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뉜다. 조선시대 왕도 이런 '수신(修身)'이 성군과 폭군을 갈랐다. 세종은 잘못을 후회하고 고쳐나가면서 성군(聖君)이 됐고, 정반대의 길을 걸은 연산군은 폐주(廢主)로 남았다.

교수들이 2022년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뽑았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교수신문이 전국 대학교수 93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50.9%(476표)가 '과이불개'에 표를 던진 것이다. 과이불개는 공자와 제자들의 언행을 담은 논어에 나온다. '위령공편(衛靈公篇)'에서 공자는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라고 했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는 뜻이다.

과이불개를 추천한 박현모 여주대 교수는 "지도층 인사들의 정형화된 언행을 잘 보여주는 말"이라며 "잘못이 드러나면 이전 정부, 야당 탓만 하고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를 선택한 어느 교수는 "이념진영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패배자나 피해자가 될 것 같다는 강박에 일단 우기고 보는 풍조가 만연한 듯하다"고 했다.

이번 설문에서는 욕개미창(欲蓋彌彰·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남), 누란지위(累卵之危·달걀을 쌓아 놓은 것같이 위태로움), 문과수비(文過遂非·허물을 어물어물 숨기고 뉘우치지 않음) 등도 100표 이상을 얻었다.

기실 '과이불개'는 점잖은 표현이다. 올해를 되돌아보는 사자성어로는 차라리 이장폐천(以掌蔽天·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림)이나 지록위마(指鹿爲馬·남을 속이려고 옳고 그름을 바꿈)를 꼽고 싶다. 국민이 뻔히 아는 사실마저 '아니다'고 우기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중앙무대는 그렇더라도 해남 무대에 어울리는 올해의 사자성어는 무엇일까. 정치권의 난형난제(難兄難弟·우열을 가리기 어려움)나 방약무인(傍若無人·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함), 농어촌의 노이무공(勞而無功·애를 썼는데 보람이 없음)이 떠오른다. 다가오는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癸卯年)에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의 지혜가 가득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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