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정치인이 처신에 조심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말, 돈, 술이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경구(警句)이나 정치인이 이들 세 가지에서 잘못하다가는 자칫 정치생명이 단축되는 독(毒)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세 치 혀가 뱉어낸 말(言)이다. 품격(品格)은 사람의 품성과 인격을 이른다. '품'의 한자는 입(口)이 세 개 모여있다. 말이 쌓이고 쌓여 품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예부터 말 잘하면 변호사, 말 많으면 약장수라고 하지만 정치야말로 말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그런 만큼 정치인에게 말은 이미지를 형성하는 중요한 덕목이다. 나머지 두 가지에서 돈은 감방으로 가는 지름길이고, 술도 갖은 추태를 만드는 주범이다. 어느 정치인은 골프, 폭탄주, Y담(음담패설)을 들기도 하고, 어느 기자 출신은 언론 비판을 금기사항으로 꼽기도 한다.

사실 이런 유의점은 정치를 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애써 조심해야 한다. 정작 유권자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에게 금기사항은 따로 있다. 정치 기반인 지역구와 주민에 대한 갑질이다. 어찌 보면 지역구 주민은 정치인에게 절대적인 갑의 위치에 있다.

헌데 지난주 두륜산도립공원 잔디구장에서 열린 삼산면민의 날에 남 보기 부끄러운 민망한 일이 벌어졌다. 이날 축사에 나선 윤재갑 국회의원과 박종부 군의원의 말을 간추려 본다.

(윤재갑 국회의원) "최근 국힘당 국회의원한테 항의받았어요. 천년고찰 대흥사에 호국대전 짓는다는데 어떤 군의원이 군에 쓸 돈도 많은 데 쓸데없는 거 이런 거 짓고 있다고 얘기해서./누가 그랬는지 물어보진 않았지만 이런 말 때문에 큰일 났어요./서산대사께서 승병들과 함께 나라를 지킨 호국대전을 짓는데 일반인도 아니고 세상에 어느 군의원이 이따위 망발을 한단 말입니까./(윤석열 대통령의 욕설 발언을 두고)대한민국 국회는 개새끼들입니까. 정말 말조심합시다. 저도 말조심하겠습니다."

(이어 등단한 박종부 군의원) "조금 전에 윤재갑 의원님은 누가 그랬는지 분명하게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단상 아래로 내려간 윤 의원) "뭘 밝혀, 임마." (박 군의원) "임마라니, 공석에서 임마라니." (윤 의원) "뭘 밝혀." (박 군의원) "분명하게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윤 의원) "내가 지금 말해줄까?" (박 군의원) "지금 밝히세요."

이를 지켜본 주민들 사이에 "여기 쌈하는 데여?", "아따, 남의 행사에 쌈하러 왔소?"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삼산은 두 정치인의 지역구이고, 이날 행사는 오랜만에 열린 면민의 축제이다. 말 그대로 유권자의 잔칫상에 두 정치인이 와서 고춧가루를 잔뜩 뿌린 꼴이다. 주민들에게는 철저히 무시당한 기분이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을 것이다. 두 정치인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는 듯 지금까지 사과의 한 마디도 내비치지 않는다. 서로 간 좋지 않는 감정이 사석에서 이런 모양새로 분출되더라도 공인으로서 결코 적절하지 않다. 하물며 주민들이 깔아준 멍석에서 안하무인의 추태를 보인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면민의 날 행사는 어디까지나 면민이 주인이다. 그렇다면 모든 프로그램은 면민 위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참에 이름깨나 있다는 인사들의 축사도 확 줄여야 한다. 주민들에겐 줄줄이 이어지는 뻔한 내용의 축사를 참고 들어야 하는 것도 큰 고역이다. 추태를 부린 정치인에게 주민의 이름으로 '행사장 출입금지'의 벌칙이라도 내려보자. 그래야 무시당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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