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희(해담은3차아파트 공동체 대표)

 
 

우리집은 안방 발코니에 세탁기와 건조기의 자리가 있다. 그런 까닭으로 발코니에 종종 마른 세탁물이 널브러져 있고 때때로 욕실에 마른 수건이 떨어져서야 빨래를 갤 때도 있다. 밀려서 하는 일이니 시간이 오래 소요되고 그럴 때마다 짜증이 난다. 빨래를 개어주는 기계가 나오기만 하면 그것부터 사리라 또 다짐하면서 양말을 개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대상포진에 걸려 입원한 친구였다. 그 친구는 대상포진은 좋아지고 있는데 약이 독해서 그런지 멀쩡하던 장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독성, 부작용 없는 약은 없다'는 명제는 참이다.

통화 후, 불현듯 독일의 종 보호 활동가 디르크 슈테펜스와 환경 전문기자 프리츠 하베쿠스가 쓴 '인간의 종말'의 어디쯤인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의학에서 사용하는 '부작용 없는 작용은 없다'는 말은 생태계에도 적용된다고 말한 대목이 생각났다. 책에서는 어떤 종류의 야생 벼가 사라지자 원주민도 사라졌다는 예를 들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부작용 없는 작용은 없다'라는 명제가 적용되지 않는 곳은 없는 것 같다. 경력이라고는 검사밖에 없는 대통령의 행태는 어떤가? 또한 그 명제를 인간의 새로움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욕구와 지구환경에 적용해 보자. 5년 전,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할 때 제일 장만하고 싶었던 전자제품이 건조기였다. 비가 여러 날 와도 걱정이 없고 빨래 먼지도 제거되니까 사용하면서 만족스럽고 편리해서 얼마동안 건조기 전도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한발 더 나아가 빨래 개는 기계를 요구한다. 끝없이 추구하게 되는 새롭고 편리한 전자제품은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하고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발생시킨다. 그러면 점점 더 더워져 에어컨을 시도 때도 없이 켜면 프레온 가스가 지구를 더 뜨겁게 하고 공기가 나빠지면 공기청정기를 틀지만 그것도 같은 부작용을 낳는다.

이런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만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석 달 가까이 하는 해남천 순환산책로를 도는 새벽 산책길에는 밤새 누군가 버린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다. 캔, 담배꽁초, 비닐봉지, 일회용 플라스틱 컵 등을 다른 누군가가 주워야 하는 수고로움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수질을 오염시키고 결국 먹거리를 직접적으로 오염시킨다. 5초면 생산되는 플라스틱은 많은 장점 때문에 음식배달에 큰 기여를 하였지만 분해에 500년이 걸린다. 인간의 새로움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욕구는 항상 기후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다.

지금 해남의 대부분 배추밭, 마늘밭에는 스프링클러가 돌아가고 있다. 작년 가을의 연이은 태풍 이후, 비다운 비가 내린 적 있는가?

개인적으로는 다행스럽게도, 환경 활동과 관련 있는 '해남은 노는 물이 달라요'와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불편함을 견디는 힘을 키우고 있다. 분해되지 않아 물고기가 숨을 못 쉬게 한다는 합성계면활성제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 천연 설거지 비누를 만들어 사용한다. 시중에서 파는 독한 화학물질이 들어있는 배수관 세척액 대신 이엠(EM) 발효액을 만들어 사용한다. 자원순환을 위한 분리배출을 위해서 비닐봉투의 라벨을 오려내고 씻어서 물기를 말리고 페트병도 매뉴얼대로 차곡차곡 모은다. 자연환경에 이로운 행위는 번거롭고 수고스럽지만 20년 전에 아무 생각 없이 산 우리는 지금이라도 불편함을 견뎌야 한다. 지금 우리가 불편해야 우리의 미래 세대도 최소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만큼 살 수 있다.

대기과학자 조천호는 현재의 기후위기 현상을 발생시키는 온실가스는 20년 전 우리가 방출한 이산화탄소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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