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긴소매를 찾게끔 제법 쌀쌀한 기운이 감돈다. 이름만 들어도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 가을이지만 저 멀리서 잉태한 태풍 소식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역대급이라는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지나가자마자 12호, 13호, 14호가 줄지어 생겨나고, 진로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가을에 찾아오는 태풍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젠 빈도와 강도에서 사뭇 달라진다. 어쩌면 늘상 마시는 공기처럼 가을 불청객으로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 여기에는 지구온난화가 깊숙이 자리한다.

강한 비바람을 몰고 오는 태풍은 북서태평양(오키나와 남쪽 해상)의 적도 바로 위(북위 8~25도)에서 높은 수온의 바닷물이 뿜어낸 수증기를 먹이 삼아 태어나는 열대성 저기압을 이른다. 갓 태어난 열대성 저기압은 이동 과정에서 높은 해수 온도로 에너지를 공급받으면서 강력한 태풍으로 발달해 한반도까지 치고 올라온다. 가을 태풍이 잦아지는 요인이 바로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 온도 상승이다. 가을에는 또 북상하는 태풍을 저지하는 북태평양고기압이 여름철보다 약해진다. 이러다 보니 가을 태풍은 더 강하고 더 자주 한반도를 찾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1900년대 초반 처음 등장한 태풍(颱風·typhoon)이란 단어가 한자인 듯 보이지만 폭풍우를 일으키는 그리스 신화 티폰(Typhon)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이 이를 태풍이라고 음차했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 남쪽의 강풍을 대풍(大風·타이후)이라 불렀는데 이게 영국으로 건너간 뒤 역수입됐다는 설도 있다. 지구상에는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열대성 저기압이 태풍 이외에도 발생 지역에 따라 2개가 더 있다. 북대서양과 북동태평양의 허리케인(hurricane), 인도양과 남반구, 지중해의 사이클론(cyclone)이다.

태풍 이름은 영향권에 있는 14개 나라에서 10개씩 제출한 140개를 발생 순서에 따라 돌아가며 사용한다. 루사, 매미, 나비처럼 막대한 피해를 남긴 태풍 이름은 퇴출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태풍 피해를 많이 입는 대만은 '하나의 중국'에 말려 명함도 못 내밀고 홍콩과 마카오는 '1국 2체제'로 버젓이 참여한다. 태풍 이름까지 참견하는 중국의 이중 잣대가 고약스럽게 다가온다.

역설적이긴 하나 태풍이 반드시 피해만 남기고 떠난 것은 아니다. 가뭄이 심할 때는 많은 비를 뿌려 수자원을 공급한다. 우리나라 강수량을 책임지는 양대 산맥이 곧 장마전선과 태풍이다. 또한 공기와 바다를 뒤집어 미세먼지, 오염물질을 깨끗이 씻어내거나 적조 현상 등을 없애준다. 무엇보다도 적도 지방에 집중된 태양에너지를 극지방으로 옮겨 지구의 온도가 균형을 잡도록 한다.

해남은 우리나라 서쪽에 자리 잡아 영남지역보다 태풍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적도 부근에서 발생해 북상하는 태풍은 보통 제주도 부근에서 지구 자전에 따른 전향력을 받아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바람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부는 태풍은 오른쪽에 위치한 지역이 편서풍과 무역풍이 합쳐지면서 더욱 강해진다. 왼쪽에 위치한 해남은 그래서 다행이랄 수 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에너지를 한껏 머금은 태풍이라면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서해안을 타고 줄곧 북상할 수도 있다. 앞으로 이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100년 만의', '200년 만의'라는 수식어가 의미 없어진,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괴물 태풍에 맞서야 한다. 태풍은 엄연한 자연재해이다. 지구온난화가 몰고 올 최악의 재해를 상정하고 대비하는 게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이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