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가보니 애국자는 단 한 사람도 없더라." 황산 출신으로 해남·진도지역구에서 재선 국회의원을 지낸 고 이정일 의원이 생전에 한 말이다. 유권자의 표를 먹고 사는 선량들이 말로는 국가를 외치지만 정작 저마다 정치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정치인은 자신의 부음 기사만 뺀 어떤 내용이라도 언론에 노출되면 좋다는 얘기도 있다. 인지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20년 전의 얘기이나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지지 않을 터이다.

동서고금, 아니 앞으로도 정치판에서 이런 선사후공(先私後公)이 사라지길 기대한다는 것은 순진무구한 생각이다. 그건 나무에 올라 물고기 잡기(緣木求魚·연목구어)만큼이나 어렵다고 봐야 한다. 정치는 어찌 보면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表裏不同), 좀 더 심한 표현을 빌리자면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말을 자양분 삼아 생명을 유지해나간다. 그게 권력의 속성이기도 하다.

요즘 정치판이 양두구육이라는 고사성어로 시끌벅적하다. 이 말은 공자가 태어나기 전, 2500년도 훨씬 더 거슬러 올라 중국 춘추시대의 일화에서 유래한다. 제나라 임금인 영공이 궁녀들에게 남자 옷을 입히고 즐기자 이런 풍습이 온 나라에 퍼진다. 몇 차례 남장(男裝) 금지령에도 좀체 사라지지 않자 재상인 안영에게 대책을 물었다. 안영이 임금의 행태를 꼬집는 말을 한다.

"공이 총애하는 융자가 남장을 하고 다니면서 퍼진 풍습입니다. 궁중 여인에게 남장을 허용하면서 민간에는 금하니 이야말로 문밖에 소머리를 걸어두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 영공이 크게 깨닫고 궁중 여인들의 남장을 금지하자 비로소 남장하는 풍습이 사라졌다. 원전인 '안자춘추'(晏子春秋)에 '소머리에 말고기'로 등장했는데 1500년쯤 후인 송나라 시기에 '양머리에 개고기'로 바뀌었다고 한다. 정육점에 양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파는 것이니 '겉과 속이 다름'을 일컫는 말이다. 양두구육에는 남을 속이려는 의도의 사기성이 진하게 녹아 있다.

송나라 때 바뀌었다는 '양두구육'을 보면 요즘 국산과 수입산 농축산물 차이처럼 양고기는 비싸게, 개고기는 싸게 팔렸던 모양이다. 개는 사람과 가장 친한 동물이면서도 한자에서 구(狗)와 견(犬)으로 상반되는 대접을 받고 있다. 구는 구탕(狗湯·보신탕), 토사구팽(兎死狗烹), 주구(走狗·앞잡이), 이전투구(泥田鬪狗)처럼 식용이나 좋지 않은 의미로 쓰인다. 애완견(愛玩犬), 견마지로(犬馬之勞)에서 사용되는 '견'과 사뭇 다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내부 총질' 문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지난 16일 자동 해임돼 이젠 전 대표이다)의 '양두구육'과 '이 새끼 저 새끼' 표현,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을 중심으로 한 여당의 행태를 보노라면 "이게 나라냐"는 탄식이 저절로 나온다. 저잣거리 안줏감 정도의 저급한 말들이 우리나라를 움직인다는 최고의 권력층에서 난무하는 걸 지켜봐야 하는 국민은 그 역겨움에 속이 다 뒤집힌다. 원래 그런 정치판의 민낯이 세상에 알려졌을 뿐이라고 위안 삼을 수도 있다. 대통령의 턱없이 낮은 지지율이 아사리판의 진앙지라고 할 수도 있다.

분명한 건 그들에게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도 안돼 터진 권력자들의 추태는 오만과 안하무인이 바탕에 깊숙이 깔려있다. 이런 이전투구를 해결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엊그제 한 진보적인 시민단체가 '윤석열 퇴진'을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그렇지만 온 국민이 또다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뛰쳐나가야 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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