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호(북일면 주민자치회장)

 
 

"할머니, 이 집에 몇 분이 사세요?"
"보면 몰러? 나 혼자여."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뭐라구?"
"할머니, 띠가 무엇이세요?"
"말띠여."
"와, 곧 100세이시네요."
"고향은요?"
"일본서 시집왔제."
"그러시구나. 언제 오셨는데요?"
"해방되고. 혼자 왔제."
"결혼은 언제 하셨는지 기억나세요?"
"몰러."
"몇 살 때 시집가셨어요?"
"해방되고 이렇게 저렇게 살다가 글씨 더운 여름에 고모부한테 끌려가서 군인 얼굴 한 번 보고 그렇게 방에 갇혔지."
"그때가 스무 살 때쯤일까요?"
"전쟁 간다고 그랬당께. 그 뒤로 5년인가 더 있다가 신랑이 왔어."
"그럼 슬하에 자녀분들은 몇을 두셨어요?"
"응?"
"아드님하고 따님이 몇이냐고요?"
"다 먼저 가버렸어."
"아, 이런 이런…."
"6남매가 나 혼자 남겨두고 다 가버렸제. 이 놈의 팔자가 뭔 팔자인지 목숨이 왜 이리 긴지 몰러."

차가 없이 걸어서 다녀야 했던 할머니에게 5리 길은 좀 멀었고 10리길(4km)은 아주 멀어서 웬만한 일이 아니면 동네에서 거의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읍내는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지금도 동네에서 차로 30분 거리이니 꽤나 먼 거리이다. 가난한 동네에서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면서 젊은 시절이 다 갔고 자식들이 타지로 뿔뿔이 흩어져 나갔다고 한다.

"서울? 그런 데를 아예 모른당께."

"그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세요?"

"그려. 자식 중에 거기 살다가 간 놈도 있는데 못 갔제. 5년 전에 막둥이 놈까징 갔제."

잠시 적막이 흐른다. 할머니가 말을 잇지 못한다.

"할머니, 생활은 뭘로 해결하세요? 뭐 타시는 것 있으세요?"

"매달 쬐끔 뭐를 주면 모타놓제."

"아, 노령(기초)연금이요? 아니, 몇 푼 안 되는 걸 뭘 하신다고 모으세요? 그럼, 생활은 어떻게 하시고요."

"맹절 때 자식놈 내려오면 줄라고. 백만원은 줘야제."

몇 푼 안 되는 연금마저도 안 쓰고 모으시다니. 세상에 도대체 자식 사랑이 무엇인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세상에 노령연금을 받아 가는 자식들은 또 뭐람. 시골 노인들의 100만원은 거액이다. 1년을 꼬박 모은 돈이다. 이런 분들이 한둘이 아니다. 세월에 뒤떨어진 노인들에겐 현재 세상이 가까이에 있지 않다. 그저 과거 세상만 있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관에 눕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공수거가 되어 버렸다. 눈물과 한숨이 서린 인생극장이 많다. 이들 대부분이 무릎, 관절, 허리가 고장나 있다. 쉬어야 할 때 제대로 쉬지 못하고 아니, 평생을 바쁘게만 살아 온 터라 온몸에 이상을 달고 있다.

추운 겨울도 난방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할머니의 '가고 싶다'는 간절한 대답은 말동무인 듯하다. 우연히 마을 할머니의 험난한 이야기를 듣고 나온 나의 걸음은 바다로 향하고 있다. 원치 않는 독거노인이 되어 신세 한탄을 하며 지내고 있는 할머니. 남김없이 자식들에게 주고 가시는 할머니. 먼저 가버린 자식들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

이 대화를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 동네는 그렇게 늙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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