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대의 부정적인 사회나 제도, 고난의 인생 역정을 끄집어낼 때 '쌍팔년도' '58년 개띠'라는 말이 예전엔 곧잘 쓰였다. 

'쌍팔년도'는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다는 해(기원전 2333년)를 기준으로 한 단기(檀紀) 4288년에서 파생됐다. 서기(西紀)로 환산하면 한국전쟁이 끝나고 2년이 흐른 1955년이다. 당시 농촌 안방에는 국회의원 얼굴 사진이 들어간 달랑 한 장짜리 달력이 벽 한 켠을 차지했다. 서기가 일반화되지 않던 시대, 달력엔 으레 단기로 해를 표시했다. 미국이 던져주는 곡식으로 근근이 연명해야 하는 찢어지게 가난하고 독재와 정치깡패가 판을 치던 어두운 쌍팔년도이다.  

1958년생을 일컫는 '58년 개띠'는 나 빼고 100만 명의 동년배가 있을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헤치며 인생을 걸어왔다. 대학 시절엔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에 맞서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다. 한창 일할 나이인 40대에 접어들자 IMF(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아야 했다. 이런 인생 역정이 시나 소설, 영화의 소재로 다뤄지곤 했다. 

'베이비부머(baby boomer)'는 쌍팔년도(1955년)에 시작해 '58년 개띠'에서 정점을 이루고 1963년까지 9년간에 걸쳐 태어난 세대를 이른다. 이 세대는 60~70년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향한 이촌향도(離村向都)의 주류이기도 하다. 힘겨운 시절의 산물인 이촌향도는 희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자기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난다'며 위안 삼던 배곯은 시절, 자식만으로 야구팀(9명) 구성이 가능했던 시절에는 가족을 위한 자기희생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그 희생의 대가는 대개 실망으로 이어지고 불행으로 결말이 나곤 한다. 해남의 어느 가족 이야기처럼 주변에 널려 있다. 그 집안은 전답 팔고 초등학교만 간신히 나온 동생들이 돈벌이에 나서 장남 출세에 모든 지원을 쏟았다. 의대를 졸업한 장남은 개업의가 되고 나름 출세했으나 '내가 잘났기 때문'이라며 자신을 위해 희생한 동생들을 '나몰라'라 했다. 장남의 아내도 은근히 도움을 기대하는 남편의 동생들을 벌레 보듯 멀리했다. 피를 나눈 형제 사이는 결국 파국을 맞았다.

이 집안의 이야기가 곧 우리나라 농업·농촌·농민(3농)이 여전히 겪고 있는 현실이다. 수출을 앞세운 우리나라 경제성장은 3농의 희생과 수탈의 역사이기도 하다. 국가 자원을 수출 대기업에 몽땅 몰아주고, 값싼 외국 농산물을 들여와 농민의 가슴에 피멍이 들게 했다. 시쳇말로 눈 뜨고 코 베인 꼴이다. 

정부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기로 하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11개국(일본,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칠레, 페루,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의 경제 동맹체인 CPTPP의 개방률(관세 철폐율)은 96~100%에 달한다. 이 협정에 가입하면 쌀, 고추, 마을, 양파, 쇠고기 등 농수축산물 빗장이 아예 풀릴 것이다. 제조업을 밀어주기 위해 또다시 농어민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가뜩이나 설 자리를 잃어가는 농어민들에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정부의 논리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농업의 피해보다는 다른 산업의 이익이 크다는 것이다. 

농업·농촌은 단지 먹거리 생산기지에 그치지 않는다. 자연생태의 보고이자 힐링의 공간이다.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생명수의 저장고이다. 유효기간이 지난 손익 계산법으로 언제까지 농어민을 울릴 것인가. 장남 하나 잘되라고 동생들은 다 죽어도 괜찮다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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