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이 100점을 나눠 갖는 경기라면 윤석열의 0.73점 차 신승으로 막을 내렸다. 경기 이전만 하더라도 호남인 사이에는 '누굴 응원해야 하냐'며 서로의 생각을 끄집어내려는 탐색전이 활발했다. 마땅히 응원할 선수가 없어 고민이 깊던 차에 다른 사람의 의중이라도 떠보려는 심산이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고 선수들의 점수가 매겨지자 '아쉬운 경기'라며 너도나도 속살을 드러낸다. 우리는 역시 '한통속'임을 확인하면서 받는 위안일까.

경기에서 패배한 원인 분석도 나름 프로급이다. 그중에는 등판 투수를 잘못 올렸다는 분석이 그럴듯하다. 선수 선발전을 복기하며 아쉬움을 토해내고, 이후라도 투수 교체를 했어야 한다고 말이다. 또 하나, 9대 1의 법칙이 오르내린다. 예전의 경기에서 보듯이 호남이라는 안방에서 90% 넘는 일방적인 응원이 나오면 이긴다는 말이다. 텃밭에서 압도적인 응원이 수도권의 응원을 이끌어내는 지렛대가 된다는 논리에서 나온다. 이번 경기에서 호남의 90%에 가까운 일방적 응원은 등판 선수보다는 팀을 우선한 데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경기 전엔 정작 자신도 긴가민가 하는데 함께 응원하자고 한들 씨알이 먹혀들겠는가.

대선이 지나간 자리에서 나오는 이런 얘기는 사실 술 안주감에 지나지 않는다. 호남의 몰표를 두고 민주당의 노예라는 비아냥에 속이 메스껍다거나 노발대발할 일도 아니다. '왜'라는 자문을 던져보고 나름의 자성도 필요하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자잘한 구호를 제쳐놓으면 최대의 화두는 '정권 연장(재창출)'과 '정권 교체'이다. 국민은 정권 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결과에 대한 분석은 여기서 찾아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그렇다면 문재인만 '죄인'인가. 최고 책임자로서 당연하다지만 이건 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에서 그를 에워싼 86세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386세대는 생물학적으로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을 이른다. 386 컴퓨터에서 파생되어 90년대에 생긴 용어이나 세월이 흘러 이젠 50~60대가 되면서 나이인 '3'을 빼고 86세대로 불린다. 이들은 80년대 대학가 학생운동의 주역으로 1987년 군사독재 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화 시대를 열게 한 일등공신이다. 30대에 시민단체를 결성해 진보진영을 이끌더니 급기야 정치권력의 중앙무대를 장악했다, 86세대는 원래 척결 대상으로 장기 집권, 독과점, 도덕적인 내로남불 등을 내세웠다. 기득권 세력이 된 지금, 정작 그들이 이런 함정에 빠진 채 허우적대고 있다. 지난 5년간 청와대와 민주당이 그들의 잔치판이 된 모양새이다.

국민은 이런 모습에 식상을 넘어 분노했다. 얄팍한 명분과 도덕만을 앞세운 아마추어들의 '꼰대형' 행태가 흑백논리에 사로잡힌 조선시대 사림(士林)을 연상하게 한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래서 국민이 경종을 울린 것이다. 이젠 무대에서 좀 내려와 달라고 말이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민주당의 분위기를 두고 응원 문화에서나 나올법한 '졌지만 잘 싸웠다(졌잘싸)'는 말이 흘러나온다. 0.73% 차이로 졌으니 그래도 잘했다는 것이다. 곱씹어보면 경기 전부터 이미 확연한 실력 차이를 인정하고 출전했으니 선전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들만의 궤변으로 또다시 보호망을 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을 쥐락펴락하는 86세대의 실체를 다시 드러낸 꼴이다. 이번 대선은 내로남불과 자신만이 옳다는 비뚤어진 정의에 대한 냉엄한 심판이다. 애써 외면한다고 숨겨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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