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메이커'는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선거 참모인 엄창록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DJ에 김운범(설경구), 엄창록에 서창대(이선균)가 재가공되어 등장한다. 이 영화는 20대 대선(3월 9일)을 40여 일 앞두고 개봉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해남시네마에서도 오는 22일까지 상영된다.

영화는 김운범이 1961년 강원 인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한약재상 서창대와 선거 참모로 인연을 맺은 뒤 1967년 목포 국회의원 선거, 19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유진산 총재와 DJ, 김영삼, 이철승 후보가 가명으로 등장), 이듬해 7대 대선을 주무대로 꾸며졌다. 김운범은 대의를 앞세운 정치인, 서창대는 승리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참모로 그려진다. 10년간의 둘의 관계는 김운범이 자신의 집에 터진 폭발물 사건을 서창대의 '짓'으로 의심하면서 종지부를 찍는다.

영화에서 엄창록은 '네거티브 선거 기법의 원조'라고 불릴 만큼 갖은 마타도어(흑색선전) 기법을 쓴다. 목포 선거에서 상대 후보가 돌린 고무신과 와이셔츠를 번지수 잘못이라며 회수하는 등의 수법이 등장한다. 엄창록은 대선 며칠 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포섭으로)박정희 측으로 넘어가 영호남 지역감정을 선거판에 끌어들였다. 실제 7대 대선에서 DJ는 90만표 차이로 패배했다. 이는 호남에서 앞선 60만표, 영남에서 뒤진 150만표 차이와 거의 일치한다. 엄창록은 한참 후인 1987년 노태우 측에서도 요청을 받았으나 거절하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킹메이커'(kingmaker)는 말 그대로 왕을 만드는 사람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대통령을 만드는 핵심 전략가이다. 시대의 흐름을 꿰뚫는 정치 감각과 판단력, 충성심 등을 두루 갖춰야 한다.

동서양 역사에 숱한 킹메이커가 등장하고, 상당수는 '왕따' 당하거나 비운을 맞는다. 고사성어인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유래가 대표적이다. 이 말은 중국 춘추시대 범려가 월나라 구천을 패자로 만들고 제나라로 떠난 후 절친했던 문종에게 보낸 편지에 나온다. 문종은 충고를 받고 병을 이유로 칩거했으나 자살을 강요당한다.

2200년이 흐른 지금도 장기판(漢·楚)에서 항우와 싸우고 있는 유방은 삼불여(三不如)라고 했던 핵심 참모(장량, 소하, 한신)의 힘으로 한나라 황제에 올랐다. 이 가운데 소하만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남는다. 장량은 유방이 황제가 되자 지금은 유명 관광지가 된 장가계(張家界)로 몸을 숨겼고, 한신은 삼족이 죽임을 당했다. 장가계라는 지명은 유방이 군사를 보내 장량을 죽이려고 했으나 실패하자 '그곳에서만 살아라'고 했던 데 연유한다. 수양대군(세조)이 책사인 한명회를 두고 '나의 장자방'이라 할 정도로 장량은 뛰어난 지략가였다. 이성계를 내세워 조선을 건국한 정도전도 명불허전의 킹메이커이다.

현대의 킹메이커에서 허주(虛舟)로 더 유명한 김윤환(2003년 작고)을 빼놓을 수 없다. 1987년(노태우), 1992년(김영삼)에 성공하고 1997년 이회창을 '킹 후보'로 만들었다. 수틀리면 결별하는 김종인을 킹메이커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그의 궤적에서는 항우가 상부(尙父)라고 했던 책사 범증의 이미지가 떠올려진다.

20대 대선이 달아오르고 있다. 2강이라는 이재명, 윤석열 캠프에 눈에 띄는 킹메이커가 없어 보인다. 근데 진정한 킹메이커는 국민이다. 민주공화국인 우리나라는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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