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 언론사들이 앞다퉈 쏟아내는 대선 여론조사 결과가 정치의 계절을 실감하게 한다.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지지율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앞서고 있다. 오차범위 안팎이지만 여론의 추이를 읽는데 어려움은 없는 듯하다. 광주지역 한 일간지의 의뢰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광주와 전남의 경우 이 후보에게 60%대의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 이대로 가면 실제 투표에서 또다시 90%가 넘는 몰표도 어렴풋이 상상된다.

영국의 어느 정치인은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과 함께 통계(여론조사)를 세상에 있는 3개의 거짓말이라고 했지만 여론조사는 의도적으로 조작하지 않는 한 민심을 읽는 유효한 지표이다. 여론조사는 그 자체로 판세의 잣대가 되지만 판세를 만드는 힘도 막강하다. 시류에 편승해 의사를 결정하는 이른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이다. 밴드왜건은 행렬을 선도하는 악대차이다. 악대차가 연주하면서 거리를 지나가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를 보고 또 무작정 뒤따르면서 군중이 불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다른 사람이 많이 사는 상품을 보고 이를 구입하는 현상도 밴드왜건 효과이다. 낯선 지역에서 식당을 고를 때 손님이 많은 곳을 찾아가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20년 전인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당시 동교동계를 등에 업은 이인제에게 대세론이 실렸다. 경선 전 노무현의 지지율은 고작 2%대에 머물렀고, 광주에서 경선도 이인제, 한화갑의 승리가 점쳐졌다. 그런데 노무현이 깜짝 1위를 차지했다. 노무현은 광주 경선 이후 대전·충청권(이인제 출신지)을 제외하고 모두 이겼다. 이를 두고 지난해 9월 민주당 광주 경선을 앞둔 당시 이낙연 후보가 "2002년 호남이 위대했던 이유는 될 것 같은 이인제 후보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어야 할 노무현 후보를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이보다는 2002년 광주 경선 직전에 발표된 여론조사의 효과가 더 컸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양자 대결의 경우 노무현 41.7%, 이회창 40.6%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 여론조사가 광주의 표심을 휘저으면서 노무현을 후보로 만들고 대통령까지 오르게 한 밑바탕이 됐다.

윤석열 후보가 대선 도전의 결심을 굳힌 데에도 여론조사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줄곧 가장 유력한 야권 주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고 마침내 국민의힘 후보 자리를 꿰차게 됐다. 그런 윤석열 후보가 대선을 2개월 앞두고 선대위 전면 개편이라는 내홍을 겪고 있다. 불리하게 나온 여론조사가 바탕에 깔려있다고 봐야 한다.

이번 대선을 두고 흔히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고 한다. 이런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하긴 어렵다. 그동안 '호감 대선'이 얼마나 있었는지 되돌아본다면 말이다. '비호감 대선'도 여론조사가 부추긴 측면이 많다. 여론조사가 크게 늘어나고 설문 내용도 다양해지면서 정치혐오가 부수적으로 뒤따라온 것이다. 물론 후보마다 여러 의혹에 휩싸인 상황이 본질이기는 하다.

선거판이 여론조사에 장단을 맞추는 모양새가 된 느낌이다. 4500만 명에 가까운 유권자의 생각을 1000명 정도의 표본으로 짚어내는 게 쉬운 작업은 아니다. 그렇지만 여러 기법을 통해 추출된 조사결과는 민심을 알아채는 중요한 수단이다. 후보들이 여기에 일희일비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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