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수도 작가 作.
▲ 채수도 작가 作.

2022년은 임인년(壬寅年) 호랑이의 해이다. 호랑이는 전설이나 속담, 민화 등에서 용맹을 상징하고 나쁜 기운이나 잡귀를 물리친다고 해 고분벽화나 다양한 그림에도 등장한다. 공포의 대상이고 단군신화처럼 신적인 존재이다 보니 지명에도 자주 거론된다. 오랫동안 우리 삶 속에 함께 하면서 익살과 해학의 대상이기도 했다. 해남에도 호랑이가 자주 등장한다. 해남과 호랑이 이야기를 풀어본다.

 

 

채수도 작가
채수도 작가

채수도(78) 향우가 희망찬 임인년 호랑이해를 맞아 해남군민과 독자들의 만사형통(萬事亨通)을 기원하며 해남신문에 호랑이 그림을 보내왔다. 경기도 광주에 사는 채 향우는 화산 송산리 출신으로 50년 넘게 호랑이와 영정 그림에 전념했다. 홍익대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했다. 35년 전 홍익대에 미술교육원이 생겨 5년을 수료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에서 호랑이 그림으로 특선에 올랐다. 우수영 충무사에 걸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 그림이 채 향우의 작품이다. 맹호도 개인전을 열기도 했으며 지금은 한국미협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대흥사 침계루에 그려져 있는 호랑이와 가재(아래) 그림.
▲ 대흥사 침계루에 그려져 있는 호랑이와 가재(아래) 그림.
 
 

대흥사 나무에 매달린 호랑이 그림

대흥사 대웅보전 입구에는 침계루라는 누각이 있다. 바로 앞에는 심진교라는 다리가 있고 그 아래로 금당천이 흐르고 있다. 대웅보전과 마찬가지로 침계루 글씨는 조선 후기 최고의 명필로 칭하는 원교 이광사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침계루 외벽을 잘 살펴보면 왼쪽에는 나무에 매달린 호랑이 벽화가, 오른쪽에는 가재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언제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없는 호랑이와 가재 그림은 왜 그려져 있을까? 

옛날 옛적에 대흥사 부근에도 호랑이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호랑이가 살생을 하니 한 노승이 짐승을 잡아먹지 말라며 꾸짖고는 금당천에 꿇어앉아 벌을 서게 했다. 호랑이는 벌을 서는 와중에도 그새 참지 못하고 꼬리를 개울에 늘어뜨려 낚시하듯 가재를 유인했다. 그리고는 꼬리를 들어 올려 가재를 잡아먹었다. 이를 알게 된 노승이 노하여 칡넝쿨로 호랑이 다리를 소나무에 매달아 묶어 버렸고 지금까지도 풀려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랑이와 가재 그림'과 관련한 이야기는 2017년 해남군이 펴낸 '설화로 꽃피는 땅끝해남'에도 수록돼 있다. 장남수 해남군 문화관광해설가는 "이 그림에서는 용맹과 공포의 상징인 호랑이가 가재를 잡아먹다가 들켜 벌을 받는 해학적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다"며 "특히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하고 있어 이를 어긴 호랑이를 죽이는 것 또한 살생이어서 노승이 나무에 매다는 벌을 준 것이다"고 풀이했다. 불교의 정신과 해학을 엿볼 수 있는 대흥사의 또 다른 볼거리이다.

▲ 삼산브레드 빵집에서 판매하는 호랑이빵.
▲ 삼산브레드 빵집에서 판매하는 호랑이빵.

빵에도 우두머리, '호랑이빵'

대흥사를 구경하고 삼산면사무소 쪽으로 가면 옆길 마을에 '삼산브레드'라는 빵집이 눈에 들어온다. 빵집 안에 들어가면 이런 이름의 빵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호랑이빵'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경기도 과천에서 살다 2년 전 삼산면으로 귀촌한 윤미순 대표는 "빵 껍질이 호랑이 등가죽이 갈라진 모양이어서 호랑이빵이라고 하는데, 프랑스에서는 이 빵을 호랑이라는 뜻의 티그레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이 빵의 원조는 프랑스에서 넘어온 것인데 윤미순 대표는 쌀가루와 올리브를 조합한 올리브 호랑이빵과 호밀과 호두로 조합한 호두 호랑이빵 두 가지 종류를 만들고 있다. 둘 다 겉은 바싹하고 속은 촉촉한 맛에 소화도 잘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올리브 호랑이빵은 좀 더 부드럽고, 호두 호랑이빵은 좀 더 고소하다. 빵 한 개당 가격은 5000원이다. 빵집은 목요일과 금요일에만 문을 연다. 호랑이해에 호랑이빵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 포레스트 수목원에 있는 호랑이굴.
▲ 포레스트 수목원에 있는 호랑이굴.

포레스트 수목원에 웬 호랑이굴

계절마다 다양한 꽃과 식물이 만개하며 한 편의 동화를 만들어내는 현산면에 위치한 포레스트 수목원. 아름다운 수목원에 호랑이굴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수국동산 뒤쪽 산으로 올라가면 바위틈 사이로 실제 굴이 있고 이 굴 이름이 바로 호랑이굴이다. 인근에 호랑이가 입을 벌리는 모양의 범두재라는 고개가 있는데 그래서인지 오래전부터 이 지역을 중심으로 호랑이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포레스트 수목원 김건영 대표는 "암석 사이로 좁은 통로가 있고 돌을 쌓아 만든 옹벽인 석축도 있어 이후에는 화전민이 살았던 흔적도 있는데, 사방이 바위로 둘러싸여 지붕만 설치하고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지금은 토종박쥐인 한국관박쥐가 서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가 온 뒤 바위 밑이 쓸려나가 공간이 생겨 자연스럽게 굴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아이들 몇 명이 앉아서 놀 수 있을 정도의 넒이와 높이이다. 실제 포레스트 수목원 곳곳에 있는 안내 푯말에도 호랑이굴이 등장하는데, 꽃동산 위쪽 산이라 많이들 찾지 않는 곳인데, 호랑이해에는 수목원의 또 다른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황산 국사봉 호랑이의 전설

지금의 황산면 원호리와 일신리에 걸쳐 국사봉이라는 산봉우리가 있다. 국사봉 호랑이는 일신리에서 전해오는 설화이다.

일신리는 성산리와 군고리를 합쳐 만든 마을로 전해진다. 옛날 옛적에는 세 마을 중에 군곡리가 가장 큰 마을이었고 군곡리에만 서당이 있었다. 이 때문에 일신리 아이들은 마을 뒷산인 국사봉을 지나 군곡리까지 오고 가야 했다. 서당으로 가서 공부하고 저녁에 밥 먹으러 집으로 내려왔다 밥을 먹고는 횃불을 들고 다시 군곡리로 가서 공부를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서당에 가기 위해 국사봉을 지나던 아이들 무리에 호랑이가 나타나 아이 중 한 명을 물고 달아났다.

일신리 주민인 김대기(92) 어르신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주위 어른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였는데, 주민들이 아이를 구하려고 산 전체를 뒤졌지만 못 찾고 결국 며칠 지나 인근 바닷가에서 시신 일부만 찾게 됐어. 그래서 그 후 주민들이 같은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일신리에 서당을 지었다고 하네."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온 이야기라 지금은 서당 흔적도 없다. 여기서 등장한 호랑이는 공포의 대상이다. 일신리 주민들은 이후 자신들의 마을에 서당을 지음으로써 아이들을 지켜내고 호랑이에 대한 아이들의 집단 트라우마를 극복해나갔다고 한다. 국사봉 어린이와 관련한 이야기도 해남군이 펴낸 '설화로 꽃피는 땅끝해남'에 수록돼 있다.

흑석산과 오심재의 호랑이 흔적

흑석산 호미동산은 전남의 숨은 명산이다. 강진 별뫼산과 가학산을 지나 흑석산 호미동산으로 이어지는데 멋진 기암과 조망이 이국적 풍경을 자아낸다. 호미동산은 멀리서 보면 호랑이 꼬리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소재는 두륜산과 주작산의 경계에 있다. 오소재에서 두륜산도립공원 자락에 있는 북미륵암으로 넘어가는 재를 오심재라 한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산적과 호랑이가 고개에 출몰했다고 한다. 특히 호랑이가 출몰하면 목숨을 잃기 때문에 행인들이 50명씩 무리 지어 넘어야 한다고 해서 고개 이름을 오십치라 했다, 오십치가 오시마재, 어시밋재로 불리다 오소재와 오심재로 불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