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희(해담은 3차 아파트 공동체 대표)

 
 

7월 6일 새벽, 일어나 창밖을 보니 굵은 빗방울이 아파트 거실 난간을 타고 떨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데 죽은 듯 잠을 잤구나 싶어 아파트 입주자회의 대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퍼뜩 정신을 모아서 이곳저곳 점검을 다녔다. 먼저, 주차장도 한눈에 볼 수 있는 2층 주민센터와 놀이터를 살펴본 후, 이런저런 중요한 기계가 놓여있는 지하실을 둘러보며 사진 몇 커트 찍고 분리수거장을 돌아보고 문을 닫는 순간 비가 좀 약해진 것 같아 찻길만 건너면 볼 수 있는 해남천을 향해 뛰었다. 황토색 흙탕물이 폭포처럼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분노한 야생동물들이 떼지어 터뜨리는 울음 같은 물소리가 무서웠다.

휴대폰에는 계속해서 안전문자가 들어오고 지인들의 전화가 빗발치는 것을 보니 전국적으로 소문난 국지성 집중호우구나 싶었다. 마침 송지로 논밭을 보러 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통제된 길을 피해 현산 월송으로 돌아 다녀왔다는 남편은 직접 보고 온 현산면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강으로 변한 들판, 유실된 도로. 모내기 철이면 상황이 더욱 나빴을 거라고 했다. 농민들이 장마철이라 논에 물을 빼놓아 그나마 이 정도일지 모른다고 했다. 우리나라 농업에서 논과 밭농사는 식량 생산의 기능도 하지만 여름철 집중호우가 내릴 때 빗물을 저장하는데 춘천댐의 저수량의 약 20배라는 그의 말에 농업, 농촌의 공익적 기능에 대해 생각했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송지에 함께 다녀오지 않은 걸 후회했다. 2021년 수능을 끝으로 과외를 그만두고 주말마다 남편과 함께 송지로 출근을 한다. 물론 농번기에는 주중에도 출근했다. 농번기가 아닐 때는 시부모님이 살던 집의 화단을 돌봤다. 살아생전 어머니는 밭이 많은 동네라 농사일에 고단했으리라. 그렇지만 동백나무, 감나무, 영산홍, 장미 등이 심어진 화단의 여기저기 자투리땅에 청양고추, 가지, 상추, 취나물을 심어서 반찬거리로 사용해서 풀이 자랄 새가 없었다. 면적이 두 평이 채 되지 않는 화단이자 텃밭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돌볼 이 없는 화단은 곧장 껄껄이풀에 점령되었다.

요즘은 시골집에 도착하자마자 화단을 보면 한숨이 먼저 나온다. 올 봄엔 비가 자주 내리지 않았고 기온이 높지 않아서 관리에 자신감이 붙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비가 자주 오면서 온갖 풀이 발아를 하고 경쟁하듯 빨리 자랐다. 양팔 뻗을 정도의 면적을 제초하는 것도 감당할 수 없었는데 이엠(EM)흙공을 만드느라 지난 주말은 가지 못했으니….

흙을 한 번도 밟지 않는 읍민은 이제야 집안 구석구석은 물론 밭이며 밭둑을 깨끗하게 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 줄 알게 되었다. 요즘 농촌 경관을 보전하는 자체가 살과 뼈를 깎아내는 농민들의 노고라는 것을 알고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우리는 농촌, 농업, 농민의 역할을 농민수당만으로 대신해서는 안 된다. 3농(農)은 이미 산업화로 충분히 희생당했다. 지금 경험하고 있는 기후위기와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감염병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변화가 시급하다는 것을 말한다. 이제는 자연과 인간이 생태적 관계를 맺을 때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기본소득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농(農)기본소득도 그 중 하나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농민들의 굵은 손마디와 굽은 허리와 자연과 인간과의 상호작용의 필요성은 농 기본소득의 정당성이며 보편성이다. 농 기본소득은 생태계와 농촌 농업 공동체를 살리는 생존을 위한 정책이다. 3농에 대한 논의가 밖에서 활발한 지금 해남읍 주민자치학교의 빈 자리는 참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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