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정광훈 의장 10주기
■ '해남이 낳은' 정광훈이 살다간 길수탈에 찌든 농촌 현실이 농민 운동가로 만들어
농업정책 바꾸는 게 이익… '아스팔트 농사' 주창
양동원 기자  |  dwyang9@h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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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5.11  17:3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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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 뒤 죽순 크는 것 봐. 장마 뒤 나락 새끼 치는 것 봐.
혁명은 그렇게 오는 것이여. 민중의 축제, 혁명의 축제장에서 만납시다.'
<'민중의 벗 정광훈 평전' 어록에서>

'영원한 민중의 벗', '아스팔트 농사꾼', '민중운동의 지도자' '농민 운동가' 등등. 정광훈 의장에게 따라붙은 수식어는 숱하게 많다. 그의 삶이 노동자, 농민, 빈민, 학생 등 항상 민중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정광훈 의장은 1939년 해남 옥천 송운리에서 태어났다. 옥천초, 해남중, 목포공고를 졸업하고 서른한 살이던 1970년 해남읍에 '입체소리사' 상호의 전자제품 수리점을 차렸다. 드라이버 하나만으로 못 고치는 게 없을 정도로 만능 엔지니어로서 재능을 가졌다. 당시 해남은 TV 난시청 지역으로, 그는 지역 유지들의 요청과 도움으로 금강산 형제바위 인근에 TV기지국을 세웠다. 이 때문에 국제전파관리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1976년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회교육원의 농촌지도자 교육을 받으면서 농민운동가로 변신하게 된다. 이듬해인 1977년 김남주 시인과 황석영 소설가와 교류하면서 본격적인 농민운동에 뛰어들며 1978년 전남기독교농민회 초대 총무를 역임하고 해남기독교농민회를 조직했다.

옥천 팔산리 출신으로 해남기독교농민회를 함께 결성했던 윤기현(72) 씨는 "정광훈 의장은 삶 자체가 맑고 어린애처럼 천진하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며 "전자제품을 수리하러 시골로 다니면서 농민들이 골병이 들 정도로 힘들게 일해도 열악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많은 고민을 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수세를 비롯해 벼농사에 매기는 농지세(갑류), 보리나 특수작물에 붙는 농지세(을류)가 가혹할 정도였다"며 "이런 농촌 현실이 농민운동을 하게 된 배경"이라고 말했다.

정광훈 의장은 197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까지 30여 년간 우리나라 농민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1982년 전국기독교농민회 총연합회 초대 교육부장에 이어 1984년 민중교육연구소 교육부장을 맡아 미국 농수산물 수입 반대 운동에 나섰다.

1985년 반미투쟁에 나선 이후 '아스팔트 농사'를 처음 주창했다. 아스팔트 농사는 아무리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생산비도 건질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의 잘못된 농정을 바로잡으려는 길거리 투쟁을 의미한다. 논밭에서 묵묵히 일하는 것보다 아스팔트 농사가 농민의 이익 실현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1990년 전국농민회전남연맹 초대 의장에 선출된 이후 1992년 농민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어 4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을 맡은 1년 뒤인 2000년에는 부시 미국 대통령 방한 반대 투쟁을 주도해 또다시 수감됐다.

배종렬(88)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1977년 대전기독교농민회에서 정 의장을 처음 만난 뒤 8년간 운동을 함께 했다"며 "그는 모든 사람과 격의 없이 지내며 항상 주위를 웃기는 유머 넘치는 사람"이라며 "지금 살아있다면 농민과 노동자 세상을 만드는데 끊임없이 뛰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남으로 귀향했던 정 의장은 2011년 4월 26일 화순군수 재보궐선거에 나선 민주노동당 후보의 지원 유세에 참석한 뒤 귀가하다 강진에서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다. 조선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같은 해 5월 13일 72세의 나이로 타계해 광주 운정동 민족민주역사묘역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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