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풀뿌리 민주주의, 곧 주민자치회가 화두이다. 비단 해남뿐 아니라 전국에서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민자치회로 속속 전환되거나 곧바로 주민자치회가 출범하고 있다.

해남에서는 14개 읍·면 가운데 북일면 주민자치회가 지난 22일 첫 출범한 데 이어, 창립총회를 마친 삼산면이 다음 달 13일 출범식을 가질 예정이다. 북평면도 지난주 주민자치회장 선거를 치렀고 연내 계곡, 황산면에 이어 내년까지 나머지 9개 면에서도 주민자치회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해 말 통과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에 주민자치회 조항(설치 및 운영 근거)이 빠지면서 '시범실시'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긴 하나, 이를 되살린 4개의 개별법안이 국회에 접수되면서 언젠가 꼬리표도 떼어질 것이다.

주민자치회는 생활과 밀접한 사항을 결정하는 데 직접 참여하고 일부 행정기능도 수행하는 등 주민 스스로 각종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그동안의 주민자치위원회가 행정에 단순 자문이나 심의 역할에 그쳤다면 주민자치회는 포괄적인 권한을 갖는다. 주민들이 지역공동체 문제를 논의하고 스스로 해결하기 때문에 명실공히 풀뿌리 자치가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주민자치회를 이끌 대표를 뽑는 과정에서 여느 선거처럼 으레 나오는 마찰음이 들린다. 시골은 어느 집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만큼 서로를 낱낱이 알고 있다. 평소 형님, 아우 하며 오랫동안 지내던 사이에 선거라는 괴물이 끼어들면 내 편, 네 편의 편 가르기가 십상이다. 이러면서 서운함이 갈등을 유발하고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반면 합의 추대 형식으로 주민자치회 회장을 뽑는 곳은 잡음 없이 일사천리의 길을 걷고 있다.

여기서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와 투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선거와 투표는 바늘과 실처럼 한 몸은 아니지만 불가분의 관계이다. 선거는 대표를 뽑는 간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수단이다. 투표는 자신이 원하는 대표를 뽑는 간접 민주주의의 수단이면서도 주요 결정 사항에 직접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방식이기도 하다. 국민투표가 이런 직접 민주주의의 절차라고 볼 수 있다.

선거와 투표가 반드시 민주주의로 귀결된다고 할 수도 없다. 박정희나 전두환은 간접이나마 국민의 선거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렇다고 독재의 아바타인 그들이 통치하던 시대를 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글자 그대로 국민이 주인이다. 정작 국민은 주인 자리에서 멀찍이 쫓겨나고, '짐이 곧 국가' 행세를 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원칙은 다수결이라고 한다. 다수결을 실현하는 방법이 곧 선거이다. 선거가 다수결의 최상의 방법이라고 하지만 그게 반드시 최상의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어떻게 보면 선거는 최적임자를 찾지 못할 때 강요되는 차선의 선택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율적인 조직에서는 더욱 그렇다.

주민자치회장도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원칙은 당연하다. 이를 실현하는 방법이 선거이긴 하지만, 경우에 따라 아닐 수도 있다. 좁은 바닥에서 선거의 최대 약점인 편 가르기, 생채기가 뒤따라올 개연성 때문이다.

자치회장 선거를 치른 후 갈등을 지켜본 주민은 이렇게 말한다. "도시 단위가 아닌 시골의 창립 주민자치회 대표를 선거로 뽑는다는 게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할 순 없다. 주민자치회가 성숙된 이후라면 몰라도 출발부터 후유증을 안고 가기에는 문제가 많다." 속속 출범하게 될 주민자치회를 앞두고 음미해볼 만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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