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상(전 전남문화관광재단 사무처장)

 
 

지금까지 우리 농업의 가치는 지나치게 먹거리를 생산하는 경제적 가치에만 치중하고 있다. 그래서 농업 선진국보다 생산력에서 뒤처지는 우리의 농업은 제대로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이러한 먹거리 생산 가치에 매몰된 농업의 탈출구를 관광에서 찾고 있는 것이 경관농업이다.

시쳇말로 그림이 되는 농작물 재배 현장을 찾는 관광객들의 트렌드에 맞춰 경관이 되는 농작물 재배지가 뜨고 있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도 2005년부터 경관보전직불제를 운영하고 있다. 경관직불금으로 더 잘 알려진 이 제도는 지역별로 특색 있는 경관작물 재배와 마을경관보전활동을 통해 농촌의 경관을 아름답게 형성·유지·개선하고 이를 지역축제·농촌관광·도농교류 등과 연계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경관보전보조금 지급대상 농지에서 지정된 경관작물을 재배할 때 가능하다. 봄만 되면 노랗게 물든 대규모 유채밭도 이 제도 덕택이다. 메밀, 코스모스, 해바라기 등도 그 대상이다.

최근 해남군이 황산면 일원에 세계적인 규모의 꽃단지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우주에서도 볼 수 있는 대규모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229만평 규모라는 것이다. 전국 최대 경지면적을 가진 해남으로서는 배포를 부릴 만하다. 수 백억원 예산도 기획재정부 출신 부군수가 자신있게 추진할 만 할 것이다. 단지 주민들의 참여와 기획, 그리고 시간과의 싸움이 관건이다. 그 흔한 대규모 유채밭 조성으로 결론내서는 안 될 것이다.

20년 가까이 뉴스사진을 쫓아 남도를 다녔던 경험으로 경관농업의 현장을 많이 볼 수 있었다. 30년 전이지만 지금도 눈에 선한 풍경이 장흥군 회진면 선학동 마을이다.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의 무대였던 곳이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종자 배추꽃과 무꽃의 조화다. 무지개떡처럼 노란색과 흰색이 밭이랑을 따라 겹겹이 펼쳐졌다. 당연히 봄 컬러 화보의 메인 사진이 됐다. 그 때는 경관직불금, 경관농업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단지 종묘회사와 농가들이 종자를 채종하기 위해 계약재배했던 것이다. 기획된 것이 아니라 농가들의 선택에 따라 종자용 배추와 무를 재배, 꽃을 피웠던 것이다. 지금은 획일적으로 조성된 유채꽃 단지를 SNS 사진으로 접할 수 있다.

우리 지역 주변에 경관농업으로 잘 알려진 곳으로는 영암 월출산 입구 유채밭과 완도 청산도 유채밭과 코스모스밭이다. 청산도는 봄만 되면 청보리밭과 유채꽃이 '서편제' 촬영지인 돌담길과 어우러져 경관이 되는 것이다. 이곳의 경관직불금 면적은 유채가 14만7000여 ㎡이며 유채 수확 후 비슷한 면적에 코스모스를 심는다. 10월 중순 가을빛여행 축제를 위해서다.

해남군이 추진하는 세계적인 규모의 꽃단지 조성과 함께 의미 있는 제안이 있어 관심을 끈다. 몇 해 전부터 연호보리축제로 알려진 황산면 냔냔이농장에 무지개꽃밭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무지개농법이라고도 부른다. 구릉을 따라 트랙터 넓이의 두 배 정도로 무지개 색깔의 꽃을 심는 것이다. 일본 북해도 비에이의 팜토미타와 강원도 고성군 하늬라벤더팜에서 그 모델을 찾을 수 있다. 주민들 참여가 관건이기 때문에 전남대 강신겸 교수가 지난 2월 25일 주민들에게 제안을 설명하는 자리에 함께하는 기회를 얻었다.

강 교수는 사석에서 경관농업과 경관관광을 결합하고 채종, 채유, 양묘사업까지 확대하는 경관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했다. 농가들이 경관직불금에 끌려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소득 창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해남에서도 경관농업이든지, 경관산업이든지 '꽃에 미친 놈'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해남 들녘에 농작물로 그린 경관으로 주민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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