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하(1904~1963)는 수필 '신록예찬'에서 5월을 이렇게 노래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四時)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 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나타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서도 만산(萬山)에 녹엽(綠葉)이 싹트는 이 때일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색하게 하는 '신록예찬'은 수필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중고교 교과서에도 수록돼 모두에게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가 5월의 초록을 찬미한 이 수필은 일제 강점기인 1937년 발표됐다. 그간 80년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도 시나브로 바뀌어 왔다. 가장 큰 변화의 흐름은 지구 온난화이다. 이제 온 산에 푸르름이 짙어가는 4월을 신록의 계절이라고 불러야 한다. 신록예찬의 무대도 4월로 앞당기는 게 시대에 맞게 다가온다.

바야흐로 산과 들에 봄꽃이 만발하는 4월이다. 지난 주말 찾아간 주작산의 바위 능선에는 연분홍 물감을 뿌려놓은 듯 진달래가 만발했다. 해남 북일 오소재~주작산~덕룡산으로 이어지는 진달래는 3월 중순 개화된 후 4월 초까지 20일 가까이 붉은 빛으로 산행을 유혹할 것이다. 만개 시기가 예년보다 5~7일 정도 이른 셈이다. 우리나라의 봄을 대표하는 진달래는 화사함이 으뜸이다. 생김새가 엇비슷한 철쭉보다 앞서 피어나고, 뭐가 그리 바쁜지 잎보다 먼저 개화한다. 봄을 상징하며 시와 노래의 소재로 등장하곤 한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1902~1934)이 평안북도 영변 약산 동대를 무대로 읊은 시 '진달래꽃'이다. '영변' 하면 북한 핵시설이 먼저 떠오르지만, 그곳의 진달래는 지금도 절경을 연출하고 있을 것이다.

진달래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생하며 친밀하게 다가오는 꽃이다. 그런 만큼 영어 이름도 'korean rosebay'이다. 원산지가 불분명한 무궁화를 대체할 국화(國花) 후보 1순위로 거론되기도 한다.(기실 무궁화는 애국가 가사 후렴 구절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이라는 애국의 상징 때문에 정부 수립 때 나라꽃으로 선택됐다.)

4월의 따스함은 이미 만개한 진달래와 벚꽃을 앞세워 수많은 봄꽃을 피어나게 하는 자양분이다. 이해인 수녀의 '4월의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꽃무더기 세상을 삽니다/고개를 조금만 돌려도/세상은 오만가지 색색의 고운 꽃들이/자기가 제일인 양 활짝들 피었답니다///꽃들 가득한 사월의 길목에 살고 있음이 감동입니다///'

4월은 생명이 잉태되는 계절이다. 이틀 후인 4일은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청명(淸明)이면서 부활절이다. 5일은 온난화로 빛이 바랬지만 식목일이자 4대 고유 명절의 하나인 한식(寒食)이다. 20일은 봄비가 내리고 볍씨를 담가 한 해 벼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곡우(穀雨)이다.

코로나19가 우리의 발길을 잡는다지만 저마다 피어나는 봄꽃마저 어찌할 수는 없다. 만물이 소생하는 4월을 맞아 싱그러운 꽃길을 걸으며 코로나에 갇힌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보자. 봄 중의 봄, 4월은 홀연히 찾아와서 홀연히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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