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시장통은 역사 뒤안길
손님 없으니 상인도 외면 '악순환'

자가생산 팔라고 호소해도 어려워
오전 9시면 어김없이 파장 분위기

 

해남에는 '시'(市)가 포함된 지명이 많다. 북일 좌일시를 비롯 옥천 이일시, 현산 구리시, 마산 육일시가 있다. 황산, 삼산, 현산, 산이면에는 '시등'이라는 같은 이름의 마을이 있다. 이 곳에는 한때 장이 섰다.

북일 면소재지인 신월리는 신월, 월송, 만월의 세 개 마을로 이뤄진다. 좌일 5일시장이 열리는 만월리(晩月里)는 예부터 장터, 좌일시로 불렸다. 좌일(佐日)은 해가 솟아오르는 땅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18세기 후반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좌일리'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으로 보아 마을 역사는 깊다. 다만 1954년 신월리에 편입되면서 가장 늦게 생긴 마을이라는 의미의 '만월'로 이름 지어졌다. 

지명에 '시'가 있는 마을 가운데 지금도 장이 서는 곳은 황산 시등과 북일 좌일 뿐이다. 좌일시장(3, 8일)은 1964년 전통시장으로 등록됐다. 여느 5일장과 마찬가지로 하루 내내 장이 섰다. 내동 앞바다에서 잡힌 낙지, 꼬막, 바지락, 개불, 그리고 김 등 싱싱한 수산물과 농산물로 유명세를 탔다. 해남읍은 물론 강진과 인근 북평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지금은 북일에서 나이 드신 어르신들만이 5일장을 들르곤 한다. 그 많던 수산물도 자취를 감추었다. 이 곳을 찾는 손님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북일은 해남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면이다. 지난 2월 말 현재 면민이 2017명이다. 10년 전 2442명보다 17%나 줄었다. 65세 이상 인구도 계곡에 이어 해남에서 두 번째로 많은 47.6%를 차지한다. 그런 만큼 이제 옛 영화를 뒤로 하고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지난 23일 좌일 5일장을 찾았다.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통은 시끌벅적해야 한다. 전통적인 시골 5일장은 만남의 공간이었다.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면서 좌일시장은 한산하고 고요하기만 하다. 장옥에 펼쳐진 10개 안팎의 점포는 간간이 찾아오는 나이 지긋한 손님을 '여유롭게' 맞이한다.

김귀동(74·해남읍) 씨는 좌일, 문내 우수영, 송지 산정 5일장을 돌며 10여 년째 의류를 팔고 있다.

"사람이 와야 장이 제대로 서는데 갈수록 뜸해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5일장"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옷가게에 기웃거리는 사람이 전혀 없다. 

40년 넘게 좌일 5일장에서 장사를 해온 안순자(83) 씨. 이날도 사과, 건어물, 녹두, 아이스박스 등을 진열해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장날이면 20만원 정도 판다고 한다. 봄 날씨치고는 다소 쌀쌀한 이른 아침에 장사보다는 화톳불을 사이에 두고 손님들과 이런저런 얘기에 더 정신이 팔린다.

어물전에서는 꼬막, 낙지, 갈치, 병어 등이 나왔다. 그래도 시골 노인들이 즐겨찾는 품목이다.

좌일 5일장은 오전 6시 정도에 장이 서 9시면 파장 분위기이다.

"장이라고 하기도 뭐하요. 명절 대목에나 장터이지 평소에는 손님 구경하기도 어렵소. 몇 안되는 상인보다 손님이 적은디, 10시면 사람 구경하기도 힘드요. 한때 인근 남창장을 허망한 장이라고 했는디, 이제 좌일장에 딱 맞는 말이오." 밭에서 수확한 대파 등을 가져와 좌판에 깔아놓은 어느 상인의 한숨이다.

좌일장이 급격히 쇠락한 데는 사람이 오지 않으면서 상인들도 떠나기 때문이다. 살 물건이 별로 없으니 손님은 더욱 줄어든다.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상인회 차원에서 5일장을 조금이라도 살려보려고 자가생산자들에게 시장에 나오라고 호소해도 여의치 않다. 대부분이 해남읍이나 북평 남창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좌일시장도 해남에서 사라진 여느 5일장의 뒤를 언제 밟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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