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호(농부)

 
 

부엌에서 식칼을 사용하여 재료를 다듬고, 써는 작업을 하고 나면 음식이 만들어진다. 패스트푸드가 아닌한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식칼을 거치지 않고는 음식으로 바뀌지 않는다.

요리하는 주부의 손에 쥐어진 식칼은 식재료를 다듬고, 회센터 주방장의 손에 쥐어진 식칼은 신선한 회를 만든다. 주부나 주방장이 사용하는 식칼은 요리의 사고를 담은 과학적 도구이다. 이런 식칼이 먹는 '식'(食)을 빼고 단순 칼로 작동하면, 1989년 1월 8일 대낮에 현대중공업에서 벌어진 '식칼 테러' 같은 사건에 연루(?)되기도 한다. 현대중공업측의 사주로 벌어진 테러로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부상당하고 연행됐다. 그 당시 언론의 주요 제목들은 '장기 노사분규, 산업마비'였고, 이 사건은 한겨레신문 외에는 보도가 안 되었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현대 측이 무료로 제공한 5성급 호텔에서 숙식을 하면서 회사가 제공하는 정보만 버무려서 기사를 뽑았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월든'(Walden)에서 "지성(知性)은 식칼이다."라고 하였다. 세상과 사물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비밀을 식별하고 파헤치는 정신이라 했다. 수많은 정보 중에서 중립성과 객관성은 빼고 자기 입맛대로만 식칼을 사용하는 '언론 지성'들이 있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빛을 발해야 하는 언론 지성이 정신줄 내려놓고, 선택적 기사 작성과 자위적 마사지 글에 매진하여 사실을 왜곡하는 '황색언론'으로 나타나고 있다. 언론 자유를 말하고 정론을 말하면서도 스스로 사사건건 정치 칼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

돈만 벌려는 지성은 각자의 개성(個性)이 아니고 개성(犬性)이 된다. 손만 굴려서 자기의 명성을 날리려는 언론 지성들, 엉터리 식재료를 넣어 무조건 음식을 뜨겁게 가열시키는 행위를 다반사로 하고 있다. 억지로 만든 음식을 강제로 먹으라는 식이다. 먹으면 건강을 해치는 음식인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갈수록 더 자극적인, 짜고 매운 음식만 만든다. 지성을 파괴하고 자학만 난무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반언론, 반지성의 말장난꾼들이 기자라고 행세하고 있다.

이승복의 "공산당이 싫어요" 조작처럼 없는 사실을 묶어서 계속 기사로 올리면 나중에는 정말 그것을 사실인양 믿는 바보들이 뒤따라다닌다. 이승복이 죽은 그때 같이 있던 그 형, '혁관'은 한 달 뒤에 병원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기자는 이승복의 형이 현장에서 그렇게 말했다고 조작했다. 기자의 상상을 사실로 조작한 것인데, 박정희 정권은 그것을 사실로 굳히고 요란하게 선전하고 교과서에까지 올렸다. 반공을 위하여 누구도 꼼짝마라는 식으로 몰아간 것이다. 증오의 울타리로 언론을 밀어붙이며 그들은 조작의 단맛을 즐겼다. 나라의 지성이 개판이 되든 말든, 자기들 권력만 확대되면 그만이었다. 당시 언론들은 사실 여부를 따지는 지성 대신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칼을 들었다.

이런 현상이 52년 뒤에 다시 반복되고 있다. 버젓이 엉터리임을 알면서도, 움직이면 쏜다는 식으로 법무장관 후보자의 가족을 대상으로 무려 90여 차례나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의 어떤 수사에도 일어난 적 없는 전무후무한 압수수색을 진행할 때, 언론들은 지성을 버리고 식칼테러에 동참했다. 검찰 권력을 위하여 전 국민을 바보로 만들고, 검찰에 기생하는 기자들이 쌍칼춤을 추었다.

한석봉의 어머니는 비록 정식으로 배우지는 못했어도 능숙한 식칼 솜씨로 아들을 명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잠시나마 진정한 펜을 길러내고자 칼이 펜보다 강했다는 일화가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요즈음 언론들이 툭하면 시작하는 반지성의 식칼춤을 이제 멈추게 해야 한다. 일부 기자들은 지성을 죽이는 테러리스트들과 같다. 지성을 죽이는 언론테러가 2021년 소의 해에는 제발 일어나지 말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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