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물결'에서 지식정보시대를 예견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1928-2016)는 또 다른 저서 '부의 미래'에서 미래 먹거리를 이렇게 내다봤다. "제1의 맛은 소금, 제2의 맛은 양념, 제3의 맛은 발효이며 세상은 서서히 발효의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의 권위 있는 건강전문지 '헬스'는 지난 2006년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김치와 일본 낫토, 스페인 올리브유, 인도 렌틸콩, 그리스 요거트를 꼽았다. 이 가운데 김치와 낫토, 요거트는 발효식품이다.

우리 조상은 삼국시대부터 채소를 소금물에 담가 절인 '침채'(沈菜)를 먹은 것으로 옛 문헌기록에 나온다. 겨울에 담가먹는 동치미가 바로 동침(冬沈)에서 유래된 말이다. 김치라는 단어는 침채→팀채→딤채→김채를 거쳐 조선시대 말부터 지금에 이른다. 김치냉장고의 브랜드인 '딤채'도 김치의 옛말에서 따온 것.

우리나라에서 지금의 고춧가루가 들어간 빨간 김치를 처음부터 먹었던 것은 아니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고추의 유입 경로는 설이 분분하다. 북방이나 임진왜란(1592~1598) 때 일본 전래설로 갈라진다. 다만 하얀 김치를 빨간 김치로 갈아탄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라고 알려져 있다.

김장문화는 7년 전 이맘때 유네스코의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보전가치를 인정받았다. 배추가 다섯 번은 죽어야 김장김치가 된다는 말이 있다. 땅에서 뽑힐 때, 칼로 다듬을 때, 소금에 절일 때, 양념에 무칠 때, 김장독에 묻힐 때라고 한다. 여기에다 발효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맛을 내는 김치가 된다.

바야흐로 김장철이다. 김장김치는 섭씨 5~7도의 기온에서 익히고 저장해야 맛을 제대로 유지한다. 이 때가 겨울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동(11월 7일) 전후이다. 이러다가 온난화와 김치냉장고 출현으로 김장시기가 늦춰지는 추세이다. 남부지방의 김장은 12월 초와 중순에 집중된다.

해남은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배추의 고장이다. 김장의 주재료인 가을배추 생산량은 평창 대관령, 충북 괴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많다. 1~2월에 수확되는 겨울배추는 국내 생산량의 70% 정도를 차지한다. 가히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절임배추가공공장도 990곳이나 된다.

온라인 쇼핑몰 '해남미소'의 절임배추 판매가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지난해보다 20% 정도 뒷걸음질하고 있다는 것. 김장을 하는 가구가 줄어들고 양념값이 치솟은 탓도 있지만, 코로나19의 영향이 크다. 손님이 줄면서 대형 식당의 주문량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각종 행사마저 백지화되면서 주문을 취소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주일예배 후 신도들의 점심이 사라지면서 교회도 양을 크게 줄이거나 아예 김장을 하지 않는다. 코로나가 내년에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담근 김장김치도 무더기로 남아 처리에 애를 먹고 있다.

이러다가 김장문화마저 점차 퇴색되어 가지 않을 까 걱정이다. 해남에서는 올해에도 부녀회나 각종 단체들이 김치를 담가 취약계층이나 경로당에 전달하고 있다.

김치가 얼마나 귀중한 선물인지는 김장을 직접 해본 사람만이 안다. 김장은 고된 노동의 연속이다. 손마디에 쥐가 날 정도이다. 목과 허리 통증은 또 얼마나 오래가는지…. 말 그대로 파김치가 된다. 그래서 이젠 남자도 팔 걷어붙이고 뛰어들어야 한다. 김장이 여자만의 전유물인 시대는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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