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호(농부)

 
 

코로나 전염병의 와중에 치러진 21대 총선이 끝났다. 혹자는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를 아주 잘 다스려서 집권당이 압승했다고 하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2017년 촛불이 아직 생생하게 타고 있음이요, 호남이 드디어 자존감을 회복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물론 겉보기에는 코로나19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방역하고 있는 점은 큰 덤이지만 시민들의 건강한 민주주의 의식이 살아있기에 온갖 악조건에서도 촛불 정부를 지켜내고, 권위적이고 퇴행적인 반공 정당을 누를 수 있었다고 본다.

그 야당은 최소한 70석은 기본으로 주는, 떠돌이 개를 후보로 내세워도 지지해주는, 보수라는 허울을 쓰고 그런 막강한 지역감정의 기반의 혜택을 누리고 있음은 물론 한국의 3대 일간지와 종편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정당임에도 큰 패배를 당하게 했음은 민주주의 승리 그 자체이다.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닌, 때론 근거도 없는 일에 생의 모든 걸 던지는 식으로 화를 내고, 나중에 후회를 하면서도 무조건 척지는 일을 한다. 자존심 때문이다. 바로 20대 총선에서 호남이 보여주었던 투표행위가 그것이었다. 풍문에 떠도는 호남 홀대론에 배신감을 느끼면서 모조리 안철수당을 찍었다. 자존감이 크게 구부러진 모습 그대로였다. 그 인물의 구체적인 모양도 제대로 모르면서 말이다. 수년이 지나 보니 순전히 엉터리였음이 밝혀졌다. 영남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와도 변치 않고 찍어주는 절개(?)와는, 상사를 향한 굴종적인 모습과는 아주 다른 차원이다.

호남의 자존감, 그것은 냉철한 이성인의 위상을 되찾는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막은 마지막 땅이 호남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깐 김대중의 근거지이다. 일관된 정의와 평화 정신을 널리 퍼지게 한 인물의 고장이다. 호남은 동학의 진원지이자 녹두장군의 후예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4·19혁명을 부른 김주열 열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한국 마지막 저항의 고향이자, 5·18의 성지 호남. 그 호남이 자존감을 앞세우면, 될 일도 안 된다. 수백 년간 차별당하고 유배당한 고향이지만 건강한 정신만은 잃지 않고 살아야 한다.

이제 21대 총선을 보내면서 마음 속에 침투해 있던 몹쓸 바이러스도 내버리고 정상을 되찾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자존감에 눈이 멀어 개념도 없이 엉터리 구호에 빠지는 모습을 되돌아보며, 총선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최고의 권력을 아름답게 행사했다면 이제 일상도 멋지게 꾸려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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