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시인)

 
 

우리의 선대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가난해서 세끼 밥 챙겨먹기도 어려웠다. 아이들 돌볼 틈도 없이 일하기에 숨 가빴고, 아이가 방바닥을 기어다니기 시작해도 그냥 방치해놓기 일쑤라서 마루에서 아이가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아이를 허리에 묶어 업고 장보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하루 종일 일하는 어머니들의 풍경은 일상이었다. 그 시기 지나면 첫째가 셋째를 업고 키웠고, 첫째들은 아이를 팽개치고 골목으로 뛰어나가 놀 때도 많았다. 정도의 차이야 있었지만 집집마다 가난은 차고 넘쳤다. 그래도 아이들은 대개 무탈하게 자랐다. 때론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 더 성공해서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지금은 아이 하나를 무탈하게 키우기도 어렵고 비용은 비용대로 어마어마하게 들어간다. 젊은이들이 결혼, 출산을 기피하는 제일 큰 이유가 자식을 잘못 키우는 죄를 저지르고 싶지 않아서라 한다. 자신도 삶이 어렵지만 자식을 갖게 되면 자신의 삶은 더 어려워지고 그 아이의 장래가 자신만큼도 못할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선조들이라고 특별하게 아이 키우는 비법을 가진 것도 아니었는데 지금은 도시의 돈 많은 집들도 아이 키우는 일 앞에서는 쩔쩔맨다.

바다 속 수온이 1~2도만 올라가도 어떤 생물종의 서식은 불가능해진다. 생물들을 아무리 잘 보존하려 애써도 기후 변화, 오염된 하천, 산성비, 토양의 산성화, 사막화, 외래종의 유입 등 생물이 살 수 있는 주변환경, 조건이 파괴된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 생태계의 파괴는 생물종 보존에 치명적이다. 어디 한군데 손봐서 해결될 수 없다.

비유컨대 교육생태계가 파괴된 것이다. 아이들은 그냥 절로 자란 것 같지만 돌아보면 그게 아니었다. 가난 속에서 협동과 참을성과 역할 분담을 배웠고, 골목에서 형 누나 동생들과 뛰어 놀면서 새로운 놀이, 세상의 일을 배우면서 자랐다. 사춘기가 되면 지들끼리 속이야기도 나누었고 시절마다 바뀌는 유행가 가사를 익히면서 컸다. 먼 곳 도시의 풍경을 그리기도 하고 꿈을 키워가면서.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보면서 어른들은 못본 체 지나가주기도 했지만 정도가 지나치거나 위험하다 싶으면 나서서 말리기도 했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훈훈한 가족과 동네의 형과 누나들, 골목, 만화방, 동네 노인과 어른들 등 이 모든 것이 교육적으로 작동했던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친구를 사귀고 놀면서 배우는 것이 아이들 성장과정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이 생태계가 파괴되었다. 아이들은 방치되어 놀 친구도 없고, 좋아하는 동네 형도 없고, 울고 싶은 마음일 때 따뜻하게 안아주던 동네 누나도 없다.

이제 면 단위에 하나쯤이나 남은 학교 한 학년 학생수는 대 여섯 명이다. 하교 후엔 각 마을로 흩어지니 밤낮없이 함께 놀 친구는 커녕 말 붙일 사람 하나 없다. 아이들은 지루한 시간을 텔레비전에 묶여 재미없게 놀다가 오락실을 가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걸로 견딘다. 도시의 있는 집에선 이 모든 것을 돈으로 사서 해결한다.

동네를 살리고 골목과 놀이터를 살리고 사람 사는 마을을 살려야 한다. 동네가 말라가는데 학교는 손댈 수 있는 게 없고, 학교가 무너지는데 동네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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