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사람의 특성을 표징하기도 하고 반면에 사람의 개성을 말살하는 통제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축구경기에서 등번호 10번을 단 선수는 그 팀에서 재능과 기술, 리더쉽이 뛰어난 선수임을 나타낸다. 그 유래는 전설적 축구선수 펠레가 활약한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부여받았던 등번호였기 때문이다.

군대 훈련소나 교도소 수감자에게는 이름보다는 번호가 주로 불리운다. 개성이나 다양성을 인정하기 보다는 통제와 조직문화에 순응시키기 위해서이다.

2차 세계대전 시기 독일 나치는 유대인, 폴란드 정치범, 집시, 소련군 전쟁포로, 독일인 형사범, 종교적 양심수, 동성연애자등을 수용소에 수감했다. 유대인들은 노란색 '다윗의 별'을 달았고 집시들은 파란세모 표, 폴란드 정치범은 빨간 세모 표를 다는 등 별도 표시를 통해 구분하고 수감번호를 부여하였다. 노동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수감번호도 부여받지 못한 채 가스실로 직행해 죽임을 당해야 했다.

119104는 그 일원으로서 홀로코스트(Holocaust, 유대인대학살)에서 살아남은 빅터프랭클의 수감번호이다. 유명 정신과 의사였던 빅터 프랑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활경험을 바탕삼아 의미치료의 창시자가 되었다. 의미치료는 사람이 미래에 이루어야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추고 중요한 것은 포괄적인 삶의 의미가 아니라 어떤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한 개인의 삶이 갖고 있는 고유한 의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곧 성취해야 할 의미와 실현시켜야 할 가치 안에 존재한다는 것으로 그는 우리가 삶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를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첫째, 무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둘째,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셋째, 피할 수 없는 시련과 곤경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와 같이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유명 작곡가가 꿈을 꾸었는데 3월 30일이면 독일이 전쟁에서 패전하고 해방이 될 거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러나 그날이 지나도 그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는 그 다음날 죽었다. 미래에 대한 믿음과 삶의 의미가 급격히 무너지면 면역력이 급속히 저하되어 죽음에 이른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의미있게 산다는 것' 이라는 책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잃어버린 원고를 다시 쓰겠다는 각오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다고 회고 하고 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팍팍한 세상살이에 삶의 의미와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고 있다. 심지어는 어린 자녀들을 동반하여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많다.

119104라는 숫자는 빅터프랭클 에게 절망이기도 했지만 "사람이란 어떠한 최악의 조건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지옥같은 수용소에서 살아 남아야 할 의미의 토대가 되었다.

그는 니체의 말 가운데 "왜 사는지 를 아는 사람은 어떤 고난도 이겨 낼 수 있다"는 말을 즐겨 인용했었다.

이 가을에 가을 숲길을 걸으며 이 상황에서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진지하게 자문자답 해보는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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