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눈길을 끌었던 드라마 <돈꽃>이 끝났다. 배경은 돈의 주인이라 돈을 지배하며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것의 노예로 전락한 재벌가의 사람들인데 혈통 세습 경영을 막아내고 전문 경영인제도라는 돈꽃(?)을 피운다는 '돈' 이야기이다. 막장드라마의 요소도 많이 있었지만 배우들의 연기력이 뛰어나고 스토리의 짜임새가 흥미롭고 쫄깃해서 재밌게 봤다.

사람의 편리를 위해 사용한 돈에 상처 받고 그 앞에 작아진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을까? 몇 년 전, 교육비가 세 배나 더 들어 아들이 가고 싶어 한 대학을 포기시키고 집과 가까운 국립대로 아들을 보내기로 했다는 말을 하는 그 엄마의 웃음에 속상함이 녹아 있다는 것을 아는 나도 아이를 보며 덩달아 자꾸자꾸 작아졌다. 하지만 돈에 기죽지 않고 돈 없어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랴 싶어 그 초라함을 애써 외면했다. 에디슨이 발명한 전구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만 끼친 것이 아닌 것처럼 인간이 만든 많은 것들이 그러하다.

10여 년 전 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얼마간은 데려다 주었다. 집 앞 횡단보도를 건너 샛골목으로 틀어 가다보면 등교하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으로 북적거리는 넓은 골목길이 나왔다. 차가 나타나면 아이들이 급히 흩어져 길을 터주었지만 혹여 고약한 보행자가 있어 길을 내주지 않으면 차가 뒤따라 갈 수밖에 없는 고만한 길이었다. 그러나 이제 거긴 차선이 그어진 도로로 바뀌었다. 주택과 빌딩들도 새로 지어져 말끔한 게 여느 도시의 골목 풍경과 다르지 않다.

예전 골목 통학로는 아이들이 온 길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이젠 차도 옆 가장자리 인도가 그네들의 몫이다. 그런데 둘이 나란히 걸을 수 있으면 다행하다. 전봇대나 가로등이 올라와 있거나 자동차가 점유하고 있으면 게걸음질치거나 차도로 내려서야 한다. 다시 나타난 넓은 인도가 반갑기는 하지만 차량진출입로가 있어 내려가고 올라가기를 계속하거나 기우뚱하게 걸어야 한다.

작년 12월 기준 해남군 인구는 7만3604명인데 자동차는 약 3만8000대가 등록돼 있다. 두 명 당 한 대 꼴이다. 골목길로는 이렇게 많은 차량을 감당할 수 없으니 차도를 확장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도로를 계획할 때, 사람이 만든 빠른 것에 쏟았던 그만한 노력만큼 보행자에 대한 배려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제천 스포츠센터와 밀양 세종병원의 화재 소식이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일 거다. 백 번 양보해서 화재는 불을 처음 사용한 구석기 시대 이래로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 쳐도 이용자와 환자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서 방화벽을 작동시키고 비상구를 막아 놓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많은 사상자를 내지 않았을 거다. 돈도 좋지만 사람을 조금 더 귀하게 여겼더라면, 좀 더 배려했다면 살 수 있었던 밀양 세종병원의 46번째 사망자의 소식을 접하며 분노하는 이유다.

며칠 전 해남군농민회 정기 대의원 대회에 갔더니 "농민회의 주인은 바로 여러분, 농민입니다"라는 말이 들렸다. 그 당연한 말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해남군의 주인은 해남 군민이고 대한민국의 주인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또한 사람 사는 세상의 주인은 사람이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대접하는지 또한 그렇게 배려 받는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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