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해남공고 교사)

 
 

대통령 탄핵을 끌어냈던 우리 역사의 위대한 한 페이지, 2017년에도 촛불은 계속되었으나 2016년 10월 28일 광화문 집회가 처음 열렸으니 촛불의 기원을 2016년으로 잡는다. (나는 촛불이 혁명이라는 주장에 아직도 회의적이지만) 위대하고도 엄청났던 촛불보다 역사적으로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고 이 해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2016년을 여성운동의 대중적 진출의 해로 기록하는 사람들이다. 어차피 역사적 사실의 선택과 기록은 기록자의 자의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세상에 촛불보다 더 중요한 일이 그해에 있었다고?

그해 강남역 10번 출구 쪽 화장실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한 남성이 여성을 찔러 죽인 사건이 있었다. 여자들은 애도하고 분노했다. 그런 일이 가끔씩 일어났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여성들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발언하기 시작했다. 포스트잇에 쓰인 글만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낼만큼 여성들의 주장은 깊이 있고 광범한 것이었다.

어이없는 죽음에 대한 애도와 함께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 "그 시간, 그 자리에 없어서 살아남았다" "당신이 죽었고 내가 살아남았다"는 부채 의식, 자조적 문제제기가 많았다. "남성으로서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를 빕니다" 같은 남성들의 자기반성도 엿보였다. 미친놈!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거다.

백주 대낮에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빼앗기는 일이 일어났다면 가해자가 미친놈이어서만이 아닐 것이다. 그 미친놈은 왜 여성을 골랐을까, 그 미친놈 종류들은 왜 여성만 타켓으로 삼는가. 문제의 뿌리는 너무나 엄청나다고 외쳤다.

다른 해석을 하는 신문이나 SNS에선 그놈은 미친놈일 뿐이라고, 여성혐오는 아니라고 특수한 예를 비약시켜 일반화시키지 말라고 여성들의 외침을 무시했다. 조사를 받거나 법정에 서서 이런 저런 이유로, 혹은 이유 없이 아무나 죽였다는 사건은 많다.

그러나 분명하게 여자라는 이유로, '그 여자'가 아닌 여자 중 아무나를 찌르려고 계획한 건 특정한 사회적 바탕이 없이는 벌어지지 않는 일이다. 거꾸로 물어본다. 하고 많은 미친 사람 중에, 살인자 중에 그가 남성이었으므로 죽인다는 사람은 없다.

인터넷이나 어떤 보수언론에선 피해자를 '강남역 화장실녀' 라고 명명한다. 사건의 주범을 중심에 놓는 '강남역 화장실남'이라는 명명은 없었다. 보수신문의 기자들은 피해자보다 가해자(남성) 우월 프레임을 쓰고 있는 거다. 기자들의 학력수준을 감안하면 어이없는 일이다. 여성혐오, 남성중심이 일상적으로 퍼져있는 것이 한국사회임을 잘 보여준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당연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는 공기처럼 스며있다. 차별과 배제가 당연시 되면 구분하기도 발견하기도 어렵다. 차별과 배제는 혐오로 이어진다. 약자의 처지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는 더욱 더 어렵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여성들은 어렵게 조금씩이나마 활동과 진출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데 여기에 위기를 느끼는 남성들이 있다. 기울어져 있는 운동장은 원래부터 그런 것이지 기운 것이 아니라고 이를 바로잡는다고 억지부리지마라는 게 그들의 문제의식이다.

여성 차별이나 혐오에 맞서 자발적으로 대중들이 나선 일이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의 삶과 사회의 변화를 모색하는 운동사에 획기적 사건이라고 당신은 생각해본 적 있는가. 어떤 점에서는 촛불보다 더 중요한 변화의 흐름이라고 생각한 적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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