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기는? 개뿔! 긴 부리로 못 먹는 게 없는 놈을 슬프다니…. 말이 안 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직박구리는 벌써 수 백 년을 돌고 돌아 긴 부리로 진화해 왔다. 하루도 쉴 새 없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길이를 조금씩 늘리면서…. 그 덕분에 이제는 쪼아대지 못할 곤충이 없고 잡아채지 못할 열매가 없다. 유럽에서 박새들을 실험했더니 근 50여년 만에 1%도 되지 않는 길이로 더 자랐다고 한다. 다른 대조군과 비교해 눈에 띄는 차이를 보였다고는 할 수 없어도 이 정도면 확신을 가질 만한 진화의 결과물이다. 그러니 긴 부리를 가진 직박구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갈고 닦아 지금의 부리를 만들었겠는가?

그러나 살아가고자 하는 그 투지는 고결해 보여도 하는 짓은 밉상이다. '삔추'라고 부르는 직박구리는 감이면 감, 배추면 배추. 열매에서 채소까지 그리고 곤충에 이르기까지 못 먹는 것이 없다. 무려 53종에 이르는 열매를 먹을 수 있다니 가히 하늘의 식도락가라 부를 만하다. 우리 집에도 가을이면 감나무와 무화과 그리고 머루가 남아나질 않고, 겨울이면 비파 열매가 입맛만 다시게 하고는 삔추들 차지가 되어 버린다. 잘 익은 열매만 어찌 그리 귀신같이 낚아채는지 속수무책이다.

집이 마을에서 떨어진 산 아래여서 더 그럴 수도 있겠다. 이놈들은 마을보다 산 속 나무들을 더 좋아하는데 그러니 산에서 가까운 곳을 먹이 터전으로 삼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제는 서울에서도 가장 보기 흔한 새가 되어 버렸다. 텃새 중의 텃새인 까치와 참새보다도 더 흔하게 보여 진단다. 무언가 직박구리를 끌어들이는 강렬한 것이 있었을 텐데 아마도 가로수로 심어놓은 벚나무와 이팝나무가 좋은 먹이 구실을 했으리라.

어쨌든 가을철 사과, 배, 감을 따는 농부에겐 큰 피해를 주는데 요즘엔 그 시다는 아로니아 열매도 따 드신다 하니 농부들 머리가 지끈거릴 수밖에…. 게다가 사람 알기를 동네 지나는 복실이 정도로 생각하니 아예 피하거나 도망갈 생각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다. 심지어는 은박지로 만든 독수리 연을 하늘에 날려보아도 며칠 지나지 않으면 다시 몰려든다. 한 놈씩 두 놈씩 살며시 독수리 연을 정찰해 보더니 위협이 없다고 확신을 했는지 다시 떼로 몰려들어 시끌벅적 가을 열매들 먹기에 정신이 없다.

이리 좋은 식욕을 가진 직박구리들도 거들떠보지 않는 곤충들이 있다. 이름하여 열점박이잎벌레들. 머루잎 구기자잎에 잔뜩 달라붙어 잎들을 갉아 먹어도 먹이로 삼지 않는다. 그저 머루 열매만 따먹을 뿐. 그런데도 여름에 새끼를 먹일 땐 영양가가 높은 달팽·매미·개구리·나방 등을 먹인다. 또 봄이 오면 식물의 꽃을 따 먹는다. 꽃을 좋아하는 새라고 꽤나 봄을 찾는 이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게다가 노래가 사시사철 그치지 않으니 낭만을 아는 새로 불릴 만도 하다. 다른 새들은 짝짓기 때에만 지저귀는데 이놈들은 한 겨울에도 "삐삑 삑" 시끄럽다. 아니 반가운 일이다. 겨울에 노래하는 새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소리가 그리 썩 즐겨들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서 이름도 직박구리가 되었다. 찧고 까부르며 시끄럽게 우는 새라는 뜻으로.

얼굴 생김은 또 어떤가. 몸 전체가 회색이다. 그런 가운데 도드라지는 것이 뺨이다. 눈 뒤로 갈색점이 눈에 확 띤다. 또 머리 깃은 말리다 만 것처럼 흩날리듯 흐트러져 있고 꼬리는 길다. 보기엔 별 매력이 없어 보인다.

생김새도, 하는 짓도 사랑을 받을 만 해 보이지는 않지만 직박구리는 그 식욕만큼이나 숲을 넉넉하게 채워준다. 거의 모든 열매들을 먹고 일을 보는데 그 과정에서 씨들은 싹이 빨리 틔워진다. 또 열매를 먹고는 적어도 300m 이상을 날아간다. 그리하여 좁은 공간에서 같은 종끼리 심한 경쟁을 하지 않으면서 새 공간에서 정착하게 해주니 산림보존에 있어서는 반드시 필요한 새가 된다. 그러니 무작정 미워하기보다 그들의 생활을 더 자연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을 때가 되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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