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해남공고 교사)

 
 

집짓기에는 설계과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아니 건물에서 살아갈 사용자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서 건축사와 논의해야 할 과정, 설계참여, 협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건물의 주인이 설계과정에 아무런 참여도 없는 건물이 있다. 학교 건물이다.

학생수에 따라 교실 칸수를 상부에서 정하면 기준이 되는 설계도면이 교육청에서 제공되어 4각의 공간이 만들어지는 걸로 학교 설계는 끝이다. 콘크리트 골조 내부의 바닥재나 차이가 있을 뿐 나머지는 똑같다. 깊게 고민해야 할 건물의 기본틀 설계과정이 송두리째 없는 것이다. 특색이라곤 하나도 없이 네모반듯한 흰색 교실로 똑같다. 복도는 굽은 지점 없이 일렬로 뚫려있고 교실도 일자로 나란히 배치된다.

단 한사람의 감시자가 복도에 서면 좌우 전체 교실에서 출입하는 학생들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고 제지될 수 있는 복도구조다. 근대의 권력이 감시를 위해 설계한 감옥의 구조 '판옵티콘'과 원리가 같다.

근대의 학교는 학생을 통제하고 길들이기 위한 기구로 성립되었고 이를 잘 담아낼 공간구조가 지금도 그대로다. 그래서 모든 학교는 군대나 감옥을 닮은 것이다. 이 복도의 위치가 대개는 건물의 북쪽면에 배치되고 남쪽에 교실이 배치된다. 학생들은 짧은 쉬는 시간인데 운동장에 나가려면 복도를 지나 동서 양 편에 하나씩 있는 비좁은 출입구를 나와서 교실 폭 만큼의 거리를 지나고 다시 화단의 폭만큼을 더 걸어서야 운동장에 다다를 수 있다. 가급적 교실에 묶어두어 더 열심히 공부하라는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불편하고 오래 걸린다.

전체적으로 둥그런 건물의 남쪽에 교실 칸마다 운동장으로 출입문을 달고, 출입문 옆에 세면대와 신발장을 배치한 학교건물을 본 적이 있다. 끝종과 함께 학생들은 운동장으로 뛰어나가고 들어올 때 절로 손을 씻게 된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지난한 설계논의를 반영하여 지은 학교라고 했다.

학교의 중앙 현관은 넓고 높은데 반해 동·서 양측에 배치된 학생들의 출입구는 낮고도 좁다. 교사나 학교를 방문하는 방문자 숫자에 비해 학생의 숫자는 10배 정도 많고 매 시간 매일 출입하여 사용빈도도 높은데 그 많은 학생이 출입하는 출입구는 현관이랄 수도 없고 그야말로 좁고도 낮은 출입구멍일 뿐이다. 여기에 비라도 오는 날이면 우산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에 젖은 운동화에 가방에, 좁은 공간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두짝문 중에서 한 짝만 열어놓으면 출입은 더 답답해진다. 정말이지 저 좁고도 낮은 출입구를 하루에 몇 번씩 이용하면서 학교를 다닐 학생들 속에서 툭 터지고 당당하고 자연스런 감성을 가진 인물은 나오지 않을 것만 같다. 그보다 열배나 적은 숫자가 이용하는 중앙현관은 넓고 높다. 방문자용 신발장까지 배치가 잘 되어있다. 거기에 한 장면 더 있다. '학생중앙 현관 출입금지!' 표시는 어느 학교에나 흔하게 붙어 있다. 교사들은 늘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라고 입에 달고 살지만 학교는 아직도 그런다.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 되기 위해서는 학생들 학부모들 교사들의 건물 설계참여가 필요하다. 그게 없는 학교건물은 일률성, 통제를 위한 감시효과가 필요한 공간이 될 뿐이다. 답습하는 원형이 일제 때 건물원리와 같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육혁명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